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D Kim Mar 04. 2022

연말 정산 - 22를 맞이하여

2021 회고, 돌아보기와 계획하기

작년에 브런치에 글을 2개 올렸으며, 그중 하나는 20년도 회고글이었다. 이상하다. 작년 목표가 글 1개는 아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22년이 밝아왔다. 나는 21년을 어떻게 보내고 싶었나? 실제로는 어떻게 돌아갔는가? 나는 어떤 사람으로 비치고 있었나?


보이는 모습이 내 본질은 아니다.


21년의 나는 특별히 주변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멋진 평가를 받았다. 다른 사람의 흐름이나 속도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직접 판단하고 행하며 결과를 이끌어낸다. 역량, 전문성, 자신감, 능동적, 협업, 기본기, 달성, 빠름과 같은 단어들이 나에게 따라붙었다. 사람들은 나를 꼼꼼하고 체계적이고 편하고 배려받는 느낌이 있고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라고 말했다. 나로 인해 활력이 생기고 정성과 진심이 느껴져서 즐거웠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있을 곳을 찾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며, 그곳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끝까지 해내곤 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까지 눈에 띄는 사람이었나? 


그러했나?


아니. 나는 내 한계에 부딪혔으며 질투와 열등감으로 가득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쓴 일기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냥 지금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지금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성적인 이유는 없어. 그냥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못난 사람 같아." 나는 꿈을 가진 사람, 열정이 있는 사람, 젊은 사람, 예쁜 사람, 자신감 있는 사람, 약점을 드러낼 줄 아는 사람, 추진력이 있는 사람, 체력이 있는 사람을 부러워했다. 나는 새로운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며 모두에게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을 부러워했고, 고난이 있더라도 자기 자리에서 꿋꿋하게 길을 걷는 사람을 부러워했다.


겉과 속이 같을 수는 없고, 타인이 보는 내가 내 본질은 아니다. 나는 열정이나 애정이 많은 것이 아니라 책임감이 높다. 나는 착한 사람은 아니지만 기준을 가지고 바르게 행동하는 편이다. 나는 빠르게 행동하기보다는 지켜보는 경향이 있으며, 그 성향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때로는 저지르기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아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진심인 것이 아니라, 진심일 수 있는 시간을 많이 보낸 사람들을 아낀다. 19년에 무기력했고 20년에 피곤했던 사람은 21년에 무료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지 못하고, 목표를 잡고 있지도 않고 그저 헤매고 있는 그 시간이 지루했고, 그런 나를 아쉬워했다.



2021년의 나는 정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만든 이미지에 끌려다니고 있었다.


 21년에는 거창하게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다. 21년이 초입부의 나는 고민하고 나아가는 시간만큼 내가 멋있고 성장하고 있음을 알았다. 내 체력이 좋지 않음도 역시 알고 있었기 때문에 21년에는 꾸준히 일상을 보내면 얻을 수 있는 목표를 만들었다. 해내고 싶었기에 표도 만들어서 관리했었다. 잘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달성 기준은 내가 사용한 시간으로 잡았다. 그중 다섯 가지만 정리해보자.


청소

목표일의 50%만큼 청소를 했다. 베란다에 있던 무너져가는 옷장을 버리고 문이 달린 책장을 들여놨다. 방에 있을 필요가 없는 물건들과 그 외 베란다에 수납되어있던 것의 20% 정도를 이 책장에 집어넣었다. 밖과 베란다, 베란다와 방 사이의 커튼도 갈았다. 커튼봉의 위치가 방에 가까워져 방치되어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물건들이 존재한다.

 

재무상황 정리 및 계획

다른 일들이 너무 많아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 돈을 냈더니 전문가가 잘 처리해줬다. 올해도 해야 하는데 너무 비싸다. 어떡하지. 또 돈으로 해결할까.


영어

주 5회 단어 암기는 꾸준히 하여 82.9%를 달성했으나, 주 3회 필사와 주 1회 회화는 2월부터 포기하여 9.0%, 10.4%를 달성했다.


포트폴리오

전혀 하지 않았다. 


운동

운동은 그냥 내 자기만족을 위해 추가한 항목이었다. 굳이 계획을 잡지 않아도 꾸준히 할 것이 분명한 내 일상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으니. 평균적으로 매주 주 3회, 125분 운동을 했다.


엉망진창이다. 꾸준히 정리하자를 목표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21년이 되자 막상 나는 목마른 사람처럼 계속 도전했고, 그것을 끝내기 위해서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달렸다. 계획했던 것을 할 시간도 정신도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중심이 아니라 주변만 쫓는 나를 피곤해했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이런 내가 지겹기도 하다. 그래서 무엇을 했는가.




일하기

 2018년에는 내 업을 가지고 처음으로 알바를 했었다. 정규직 형태가 아니더라도 어떤 회사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다는 것은 꽤 흥미롭다. 특히 주 3회만 일하면서도 생활할 수 있는 것이 짜릿했고, 일 외적인 것을 생각하고 실행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음에 감사했다. 2021년에는 내 업을 가지고 처음으로 외주를 받았다. 할 생각은 없었다. 나에게는 새해에 빈틈없게 만든 멋진 계획이 있었고, 그것을 차근차근 해내는 내가 자랑스럽던 터였다. 그러나 연이 갑자기 찾아왔고, 그는 나를 진심으로 필요로 하고 있음을 어필했다. 내 체력을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여러 차례 거절 의사를 표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디지털 노마드라는 키워드를 접한 2017년부터 외주에 대한 환상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결국 상대의 설득에 넘어가 결국 해보겠다고 말했다.


 힘들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내 능력과 상황에 맞는 대우와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상대는 모두 다 수용해주었다. 그는 내가 정해진 영역의 일만 하기보다는 조금 더 진심을 가지고 서비스를 생각해주기를 바랐고, 나도 수용했다. 돌이켜보면 둘 다 모두 순진했다. 이후는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처음에 제안, 생각,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는 일을 하게 되었고, 상대는 생각했던 일정에 작업물을 받지 못했다. 내가 일하는 방식은 인하우스의 것이었지, 프리랜서에게 적합한 방식이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와 계획, 일에 대해 다른 그림을 가지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고, 둘 다 그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일을 진행시켰다. 쉬는 시간 없이 일만 하는 시기를 보내다, 마무리를 지었다.




걷기

 일만 하는 시간 내내 움직이고 싶은 욕구가 고개를 쳐들었다. 나는 충동적으로 서울 둘레길 트레일 프로그램을 등록했다. 걸어야 하는 경로는 서울 외곽으로, 산이 포함된 길이 많아 시간을 충분히 들여야 했다. 주말이 올 때마다 틈틈이 걸었다. 같이 걸을 사람들을 찾고 일정을 잡았다. 하루 걷고 하루 쉬면 주말이 사라졌다.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같이 걸을지 물어보고, 걸으면서 본 멋진 경치는 사진으로 찍었고 정리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곤 했다. 2015년 말인가 2016년 초인가에 서울 둘레길을 처음 도전했었는데, 2021년이 되어서야 전체 코스를 다 돌아보게 되었다. 과거에 시작한 도전이 끝을 맺은 것도 즐거웠고, 서울에서도 생소한 경치를  찾아보는 것도 즐거웠다.

 인스타그램 광고 알고리즘은 나에게 제로 포인트 트레일을 소개해주었다. 한라산을 해발 0m 해안가에서부터 정상까지 오르는 챌린지 프로그램으로, 결론만 말하자면 도전도 하고 성공도 했다. 걸어야 하는 길이가 길기 때문에 혼자는 심심할 것 같아 같이 갈 사람을 수소문했지만 구하지 못했다. 한라산 바닥을 이루는 돌길이 평평하지 않고 눈이 미끄러웠고, 발목에 종아리에 허벅지에 허리 힘의 바닥의 바닥까지 다 끌어다 쓰다가 울먹거리며 내려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살면서 그렇게까지 몸을 혹사시킨 적이 없었다. 친구들에게 내가 미쳤었음을 선언했지만, 절대로 다시는 해보지 않겠다는 결심은 딱 2주 만에 사라졌다.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만들기

 서울 둘레길을 다 걷고 나니 쉬고 싶어졌다. 주말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잠만 자는 생활은 평온했다. 그즈음이었을까. 갑자기 혜성처럼 한 식물 관련 커뮤니티가 내 앞에 나타났다. 이곳은 주세요보다는 드릴게요가 문화로 자리 잡고 있었는데, 몇 번 나눔을 받다 보니 나도 뭔가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때 부모님 환갑 기념으로 자수 수건을 제작했던 것이 재미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커뮤니티의 상징을 모아서 굿즈로 수건을 제작하기로 했다. 이 때는 이게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예상하지 못했다.

 처음 관심 여부를 알아봤을 때는 덧글이 20개 내외로 달렸다. 예상한 규모였다. 수요조사를 하자 생각했던 것보다는 많은 주문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제작한 물건에 관심을 가지고 실제로 사용한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제작 가능한 수량이 확보되었고, 나는 신청 폼을 만들고 제작업체에 주문을 넣었다. 굿즈 후기가 올라왔으며 수건을 살 기회를 놓친 회원들이 슬퍼했다. 나는 추가 수량조사를 한 후 제작업체에 주문을 또 넣었다. 굿즈 후기가 올라왔으며 수건을 살 기회를 놓친 회원들이 슬퍼했다. 나는 추가 수량조사를 한 후 제작업체에 주문을 넣었다. 그렇게 3개월 동안 6종류의 굿즈를 약 800개 만들었고, 택배를 160개가량 보냈다. 제작은 재미있었지만 부피가 큰 물건의 보관 및 배송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커뮤니티의 사람들은 나를 응원해주셨고, 몇몇 분들은 힘내라고 커피값과 간식값도 입금해주셨다. 

 이 과정에서 내가 오랫동안 그려왔던 캐릭터의 저작권 등록도 진행해봤다. 내내 해야지 생각만 하고 있던 일을 해버릴 때는 뿌듯하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이 모든 일이 숙제 같았다.




세 일 모두 나에게 의미가 있었고, 멋진 경험이 되었으며 그렇게 시간을 보낸 것에 만족한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면 매 순간 간 크게 벌린 일의 마감에 맞추느라 버거워하고 있었다. 작년의 유산 중 남은 일들도 존재하여, 이것은 2월 초까지 이어졌다.


2021년의 나는 나에게 끌러 다녔다.
2022년의 나는 나를 놓아주려 한다.


 2021년에 목표했던 것처럼 2022년이 정리해야 하는 것에 발목 잡히지 않는 해가 되는 것은 글렀다. 내 발목은 아직도 무겁다. 나는 그냥 딱 3개만 챙기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벌릴 것이고, 그런 내 성향을 봤을 때 계획에 여유가 필요하다.


청소

베란다를 정리한다. 작년에는 20% 정도밖에 하지 못했다. 현재 베란다에 있는 모든 것을 한 번 훑고 정리하자.


포트폴리오

현 회사의 포트폴리오 1차 버전을 만든다. 형식이나 퀄리티는 중요하지 않고, 내가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고, 무엇을 하고 배웠는지에 집중해본다. 나야 알겠는가. 아무리 하기 싫어도 11월부터는 이것에 전념해야 할 것이니 다른 계획을 만들지 말자는 것이다.


건강관리

체중을 줄인다. 현 회사로 온 후에 5kg이 늘었는데, 이 이상 늘어나면 새로운 숙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




목표와 관계없이 올해 얻고 싶은 것  

    글 : 회사 생활을 하면서 들은 생각들을 긴 글로 만들고 싶다. 매번 다른 숙제에 치어서 개요밖에 쓰지 못하고 있지만.  

    수영 : 등록은 완료했다. 5년 넘게 한 체조도 사랑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세상을 넓히려고.  

    여행 : 아, 여행.  

    사람 : 잘 모르겠다. 항상 갈망하지만 막상 나에게 사람을 얻기 위한 노력은 우선순위가 높지 않았었다.   


다시, 시작

분명 21년 12월 말에 쓰기 시작했는데 글 하나 완성하려는데 왜 3월 4일인지. 그래도 올해 말과 내년 초를 위해 더 이상 미루지는 말자. 자, 그럼 조금 늦었지만 2022년 시작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연말정산 - 21을 맞이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