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거장엔 배차 시간표가 없다- 사람 43
사람 43
그 병실에 들어간 사람이면 누구나 붙들린다. 의사도 붙들리고 간호사도 붙들리고,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심지어 청소하시는 위생부 여사님들도 붙들린다.
“내 부탁, 잊지 말아요. 내 저쪽에 가서도 그 은혜 잊지 않을 테니 꼭, 들어줘요.”
들을 때마다 듣는 사람이 더 간절해지는 목소리, 아무리 바쁜 중에도 일단정지하고 온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깊고 뜨거운 눈빛, 602 호 창혁 어르신이 그 주인공이다.
칠십일 세, 십오 년 전 오십 대의 젊은 나이에 뇌경색이 와 왼쪽 팔다리에 마비가 왔다. 외국계 은행에 입행해 지점장으로 정년퇴직 후 꼭 석 달 만에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그동안 집에서 가족의 보호를 받으며 지내다가, 막내딸 결혼 후 일 년 전 요양병원으로 입원했다. 아내 혼자서는 도저히 간병이 불가능하다는 자식들의 판단이 그 이유였다.
한쪽 수족은 못 쓰지만 정신은 아직도 경제 뉴스를 즐겨 볼 만큼 명료하신 분. 말수는 적으나 얼굴엔 늘 침착한 미소로 보는 사람 모두에게 안정감을 주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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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창혁 어르신이 요즘 달라졌다. 하루 종일 사람을 부르고, 달려가면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같은 말 반복, 고개를 끄덕이고 소리 내어 대답해도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눈빛으로 열 번 스무 번 같은 말을 반복한다.
창혁 어르신이 위암에 걸렸다.
한두 달 전부터 소화가 안 된다며 식사량이 평소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을 때도, 속이 쓰리다며 거의 매일이다시피 약을 원하실 때도, 오심과 구토로 휴지를 손에서 놓지 않을 때도, 사실 그러려니 했다.
오래 누워 계셨고, 소화기능이 떨어진 것은 다른 어르신들에게도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보호자인 아들이 급성기 병원 소화기 내과로 아버지를 모시고 다녀오겠다며 열두 시간 금식을 요구했다.
“위암을 의심하시는 것 같아요. 할머니가 위암으로 돌아가셨거든요. 저희 아버지, 그래서 위암은 다 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세요.”
그리고,
창혁 어르신은 위암 판정을 받았다. 그것도 이미 손쓸 수도 없는 상태로! 처음 간 병원에서 다시 상급 대학병원으로, 모든 검사를 완료한 후의 결과였다.
창혁 어르신도 가족들도 모두 울었다. 최종 판정을 받고 돌아오던 날, 병원 직원들은 어르신과 가족들의 빨간 습자지 같던 얼굴을 보고 모두 숨을 들이쉬었다. 오랜 세월 이미 기운이라곤 다 빠져나가 얇디얇은 습자지 같던 얼굴들이었다. 누군가의 숨소리에도 파삭거리며 구겨지던 얼굴들이 울음으로 빨갛게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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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였다.
창혁 어르신의 말수가 평소의 제곱에 다시 제곱을 더해도 모자랄 만큼 많아졌다.
“나 지금 그냥 가게 해 주면 안 될까? 어차피 받아 놓은 시간이잖아. 이십 년 가깝게 식구들 고생시켰어. 여기서 더, 뭘, 또 시키라는 거야? 아직 큰 통증 없을 때 가게 해 줘요. 더 진행되면 그거, 가족들 못 봐. 우리 어머니 가실 때 내가 그랬어.”
붙들린 의사가 어르신 손을 잡는다. 붙들린 간호사가 숨도 못 쉬고 그냥 서 있다. 붙들린 내가 빨간 습자지가 되어 어르신처럼 젖는다. 붙들린 요양보호사가 또, 운다.
“통증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해 줘요. 주사든 약이든 뭘 써서라도, 우리 식구들한테 나 아픈 거 보이지 않게 해 줘요. 정신 줄 놓더라도 통증에 인상도 쓰게 하지 마. 우리 마누라 나 가고 난 후 내 그 모습 생각나면 못 살아. 죽음은 아쉬운 것에 그쳐야지 간 사람이 불쌍하고 애통하면 살아 있는 사람도 지레 죽어.”
뇌경색 후유증으로 반신불수에 위암까지 겹친 환자가 가족들의 아픔을 걱정하고 있다... 그 가족들이 괴로울까 봐 진통제를 요구하고, 나아가 지금 죽게 해 달라고 빌고 있다... 붙들렸던 사람들이 하나 둘, 슬그머니 병실을 빠져나온다. 나와서 운다.
요양병원!
죽음을 기다리는 마지막 정거장! 차라리 모든 인지 기능이 상실돼 가족도 집도 잊어버린 치매가 복이고 다행이라 여겨지는 곳! 정신은 멀쩡한데 몸만 병들어 같이 있을 사람도, 있어줄 사람도 없는 환자들은 하루가 천 년인 듯 길고 막막한 곳!
‘나 언제 죽어? 몸만 이렇게 못쓰게 됐지 아무리 눈 끔뻑이며 기다려도 저승 사지는 오지 않고, 저승사자뿐인가?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자식들도 이젠 뜸한데 언제까지 숨 붙어 있어야 돼? 잘 때마다 하느님 부처님 공자 맹자까지 다 불러 이 잠이 깨지 않게 해 달라고 빌어도 그거 하나 안 들어주네.’
취침 약을 돌리면 병실마다에서 꼭 한두 번은 듣게 되는 어르신들의 하소연이다.
요양병원! 기다리는 것이 죽음인 것을 모두가 알지만, 그 죽음 앞에서는 환자만이 솔직한 곳! 보호자도 직원도 환자의 솔직함에 어떤 대답도 준비되어 있지 못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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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병들게 했으면 정신도 같이 병들게 해야지, 팔다리 이렇게 축 늘어지게 해 내 밥도 내 손으로 못 먹게 해 놓고, 정신은 멀쩡하게 둬 온갖 눈치 주판알처럼 다 계산하게 하니 이게 어디 살아 있는 거야?’
취침 약을 돌릴 때마다 안 먹고 모아두는 환자를 발견한 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치매나 인지 없는 환자들은 직접 먹여 드렸지만, 의식이 명료해 스스로 식사를 하고 때마다 드리는 약도 스스로 드시는 분들은 약봉지를 쥐어 드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을 모은 것이다. 전직 대학교수였다는 김태식 어르신 침대 옆 탁자 서랍 제일 뒤쪽 구석에서, 휴지에 싸서 다시 양말로 한 번 더 싼 작은 뭉치가 발견된 날, 우리는 누구 할 것 없이 자책과 놀라움으로 죄인이 되었다.
‘이거 잠자는 약이잖아? 그래서 나중에 한꺼번에 먹으려고 모아뒀어. 잠자는 약이니까 많이 먹으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나 때문에 우리 선생님들 혼나서 어떡하지? 몇 알만 더 모아 먹으려고 했는데 이게 또 들키네.’
파킨슨으로 머리 아래 모든 기관이 다 흔들리는 김태식 어르신은, 빼앗긴 약 뭉치가 아까운 데다 사색이 된 우리들에게 미안해서인지 더 몸을 떨었다.
창혁 어르신이 또 콜벨을 누른다. 간호사도 모른 체하고 요양보호사도 못 들은 척 딴 일을 한다. 같은 병실 웅진 어르신에게서 나는 가래 끓는 소리가 기어코 나를 그 병실로 불러들인다.
“절대 나 아프게 두지 말아요. 아픈 거 절대 우리 식구들 눈치 못 채게 해야 돼. 암이라도 우리 남편 우리 아버지는 남들처럼 고통은 안 받고 돌아가셔서 다행이라고 우리 식구들이 서로 위안받게 해야 돼. 그거 하나뿐이잖아?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혹시 의식이 흐려져 아파도 내색 못하게 되면, 미리 잘 보고 있다가 식구들 오기 전에 꼭 진통제 줘야 돼. 약속해 줘요.”
내 가족들 대신 당신들이 괴로워 달라고, 내 가족이 아쉬움만 느끼고 일상으로 쉬 돌아갈 수 있게 당신들이 내 아픔 내 고통 다 보아주고 다 숨겨달라고 창혁 어르신이 부탁 또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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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있는 힘껏 끄덕였다. 창혁 어르신 손을 잡은 내 손에 내 온 힘이 다 들어갔다.
간호사의 지시 감독 없이는 어떤 의료행위도 할 수 없는 조무사인 내가 말이다.
자신이 겪게 될지도 모르는 통증이 두려운 게 아니라, 자신의 아픔을 가족들이 알게 돼 괴로울 것을 걱정하시는 창혁 어르신. 지키지 못할 약속도 위안과 기대를 줄 수 있다는 걸 아무나 붙들고 소리치고 싶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