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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 Jul 20. 2018

03. 할 줄 아는 것은 무엇?

아일랜드 캠프힐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 말은 여러 자기개발서와 힐링되는 어떤 활동들을 하다 보면 종종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정말 온 몸과 마음으로 느끼지 못하면 인정하기 어려운 말이다.

 

캠프힐은 못하는 일 천지였다.

한국에서도 요리를 해본 적이 없고 대학생 때 휴학하고 갔던 호주에서도 요리를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한 요리는 맛이 없기 때문이다. 향신료의 맛 궁합을 잘 모르고 심지어 레시피대로 만들어도 너무 맛이 없어서 버린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내가 바로 그 요리고자!! 이후 재료 값이 아까워 요리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나의 워크샵은 주로 요리이었다. 


내가 사는 하우스에는 약 12명의 어덜트가 지내고 있으며 스탭들까지 포함 한끼에 평균 15명이 식사를 한다.

또한 저녁에는 코워커들이 많은 음식을 하기에 체력과 시간이 소모되므로 워크샵 시간에 점심,저녁을 한꺼번에 만들어 대략 30인분을 만든다.

나는 서브로 야채를 썰거나 샐러드를 만드는 정도지만 물론 그 마저도 자신은 없었다.

어쨌든 다른 사람이 먹어야 하는 것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다.

야채를 다 썰면 할 일이 없어서 설거지를 도맡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설거지 뿐이라니 미안했다.


요리 뿐만이 아니라 10년이상 배웠던 영어, 침대시트갈기, 화장실청소, 기타 등등의 집안일은 부끄럽게도 해본 적이 없어 서툴렀다.

특히 나를 괴롭혔던 것은 '저 나이 먹고도 이것도 못하나?' 라는 남들의 시선이었다. 사실 다른 사람들은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그렇고 여기서도 이런 바보같은 생각으로 나는 스스로를 좀먹고 있었다.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도록 날 도와준 것은 다름아닌 어덜트들이었다.

요리를 정말 좋아하는 어덜트가 있었다. 그녀는 당뇨병을 앓고 있었으며 머리가 너무 다른 사람과는 확연히 작다. 그런데 고집도 어마어마해서 무슨 요리든 다 자신이 하려고 한다.

그럴 때면 코워커나 워크샵마스터가 그녀를 달래가면서 요리를 진행해야하는데, 그녀는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잘 했다. 물론 다 맡겨버리면 맛은 이상해지겠지만.. 하하. 10년 이상을 이 곳에서 살아오면서 요리만 해서 대부분의 레시피를 알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훗날 나는 라자냐 레시피를 잊어버렸을 때 그녀에게 순서를 알려달라고 한 적도 있다!


그녀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 이 곳은 장애인 뿐만 아니라 모두가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며, 실수해도 어느정도 눈감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코워커들에게 중요한 임무는 장애인들이 함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물론 요리를 잘하면 좋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잘해질 것을 알기에 너무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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