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걸었다.
아마 합정역 너머 양화대교였으리라.
그는 울었다.
필요 이상으로,
강제적으로 폐에 숨을 불어넣었다.
심장은 멈출 듯했고.
속은 뒤집혀 무엇인가를 게워내려 했지만
나오는 것은 그저 공포로 게워낸
눈물뿐이었으리라.
두 팔과 다리는 강풍에 날리는
갈대보다 더 출렁거리고,
오른팔에는 어제 고통을 이기지 못해
고통을 새긴 몇 줄의 흉터가 소리친다.
이제 이 긴 고통을
멈추라
멈추라
소리친다.
오후에 그 다리에 올랐으나,
어느새 파아란 하늘은 주황과 선홍이 섞인
오묘한 빛을 내고 있었다.
피의 색깔과도 닮고,
불타오르는 꽃의 색과도 닮은
그 하늘을 보며 감탄했다.
마음에 종이 쳤다.
눈물은 그대로 흐르고 있다.
그토록 괴롭히던 윙윙거리는 귀의 소리도.
멈출 것만 같이 쿵쿵대는 심장도.
폐를 찢을 듯 들이쉬는 들숨도.
비틀거리며 당장이라도 저 아래로 내려갈 것 같은 다리도.
오른팔에 새겨진 흉터의 쓰라림과 비명도.
아무 상관없다.
그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통에 바스러진 눈물이 눈가에 맺혀
석양의 빛을 아름답게 굴절시킬 때
그는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찬찬히 이해한다.
시선이 향하는 하늘이 온통 황홀한 적색이 되어
그의 온몸을
부드럽게,
강하게,
각각의 선율로
감싸 안으며 토닥인다.
어쩌면 그는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그 아무도 그를 이해하지 못해 그는 파아란 물로
자신을 이끄려 했으나,
따스하고 빛나는 그 바알간 빛이 그의 팔을 잡았다.
어쩌면 그는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꽃 한 송이에서 숲,
숲에서 산,
산에서 하늘과 태양으로 갈무리되는 생각의 나열은
하나에 실이 되어 그의 가장 높은 곳에서
태양을 바라보는 창으로 빠져나온다.
그 실은 물방울의 모양으로 빠져나온다.
그가 더 이상 아파하지 않으리라는 확언은 의미가 없다.
다만 그는 그 순간 석양의 품에서 약속했다.
그는 그 석양과 춤을 추며 약속했다.
남은 오늘 밤을 살아내리라,
그다음 오늘을 살아내리라,
그리고 언젠가 입꼬리에 미소를 한 아름 간직한 채로
다시 그대를 찾으리라.
그렇게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