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Grace Oct 26. 2024

오후에서 저녁

그는 걸었다.

아마 합정역 너머 양화대교였으리라.

그는 울었다.

필요 이상으로, 

강제적으로 폐에 숨을 불어넣었다.

심장은 멈출 듯했고.

속은 뒤집혀 무엇인가를 게워내려 했지만

나오는 것은 그저 공포로 게워낸

눈물뿐이었으리라.

두 팔과 다리는 강풍에 날리는 

갈대보다 더 출렁거리고,

오른팔에는 어제 고통을 이기지 못해

고통을 새긴 몇 줄의 흉터가 소리친다.

이제 이 긴 고통을 

멈추라 

멈추라 

소리친다.

오후에 그 다리에 올랐으나,

어느새 파아란 하늘은 주황과 선홍이 섞인

오묘한 빛을 내고 있었다.

피의 색깔과도 닮고, 

불타오르는 꽃의 색과도 닮은

그 하늘을 보며 감탄했다. 

마음에 종이 쳤다.

눈물은 그대로 흐르고 있다.

그토록 괴롭히던 윙윙거리는 귀의 소리도.

멈출 것만 같이 쿵쿵대는 심장도.

폐를 찢을 듯 들이쉬는 들숨도.

비틀거리며 당장이라도 저 아래로 내려갈 것 같은 다리도.

오른팔에 새겨진 흉터의 쓰라림과 비명도.

아무 상관없다.

그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통에 바스러진 눈물이 눈가에 맺혀

석양의 빛을 아름답게 굴절시킬 때

그는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찬찬히 이해한다.

시선이 향하는 하늘이 온통 황홀한 적색이 되어

그의 온몸을 

부드럽게, 

강하게, 

각각의 선율로

감싸 안으며 토닥인다.

어쩌면 그는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그 아무도 그를 이해하지 못해 그는 파아란 물로

자신을 이끄려 했으나,

따스하고 빛나는 그 바알간 빛이 그의 팔을 잡았다.

어쩌면 그는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꽃 한 송이에서 숲, 

숲에서 산,

산에서 하늘과 태양으로 갈무리되는 생각의 나열은

하나에 실이 되어 그의 가장 높은 곳에서

태양을 바라보는 창으로 빠져나온다.

그 실은 물방울의 모양으로 빠져나온다.

그가 더 이상 아파하지 않으리라는 확언은 의미가 없다.

다만 그는 그 순간 석양의 품에서 약속했다.

그는 그 석양과 춤을 추며 약속했다.

남은 오늘 밤을 살아내리라, 

그다음 오늘을 살아내리라,

그리고 언젠가 입꼬리에 미소를 한 아름 간직한 채로

다시 그대를 찾으리라.

그렇게 약속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싸구려 낭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