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_ 시작
죽어버려야겠다.
아니, 살아내야겠다.
죽어버려야겠다.
아니, 사실은 살고 싶다.
어쩌면 매일 새벽 반복되는 선문답을 간직한 채, 한 남자는 새벽 세시를 넘긴 시간, 잠에 들지 못하고 자판 앞에 앉는다. 오늘 몇 번째 이 문답을 반복했을까.
담배 냄새가 싫어 전자담배로 바꾸었지만, 이렇게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면 꼬깃꼬깃 접어둔 지폐를 펼쳐 집 앞 편의점으로 향한다.
"말X로 레드 하나요."
들릴 듯 말듯한 작은 목소리로 그는 연초 한 갑을 손에 쥔다. 얼마가 남았을까. 쓸 수 있는 돈의 거의 절반을 털어 연초를 사고 익숙하게 비닐을 벗기고, 연초 하나를 입에 문다.
가쁜 호흡 속에 연기를 섞고, 다시금 여섯 평 방 안으로 들어와 기다리고 있던 불안과 불쾌한 결합을 한다.
삶은 여전히 불친절하다.
열 살이 채 되기 전, 이 남자는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정신과에 오고 갔다. 수많은 약들이 이 남자의 혈관 속을 오갔으며,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이 남자는 차가운 정신병동에 갇혀 3주가량의 시간을 처음 겪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다.
혈관을 타고 생각을 멈추는 약에 대하여 익숙해진 것이 아마 이때 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제 막 성인이 되어 다른 친구들은 술에 취하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 무렵, 이 남자는 처음으로 "소리"를 듣게 되었으며, 스물다섯 남짓 되었을 때는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일상처럼 마주하게 된다.
스물여덟이 되었을 때, 이 남자는 난생처음으로 약 없이도 잘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름 괜찮은 나날을 보낸다. 꿈같이 행복했다.
서른이 되었을 때, 고개를 숙이고 있던 끝없는 불안과 우울과 고독과 공황은 이 남자의 문을 두드린다. 비어버린 지갑이 원인이었을까, 잡히지 않는 일이 원인이었을까,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 원인이었을까. 이제 와서 이유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이 남자는 다시금 집에 굴러다니던 벨트로 매듭을 만들어 여섯 평 방 안 속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걸어놓는다. 언제고 수틀리면 당장이라도 이 매듭에 목을 걸고, 지루하고 불친절한 삶을 마감하려는 듯 아주 잘 보이는 곳에 걸어놓는다.
살아야 할까, 당장이라도 이 지루한 것을 마무리할까.
이 남자는 이제 그 기로에 서 있다. 오늘 새벽의 이 남자의 선택은 무엇일까.
이 남자는 이제 그 갈림길에 서 있다. 오늘 새벽의 이 남자의 발걸음은 어디로 향할까.
그 어느 길을 선택할지는 그 남자의 선택에 달렸고, 그 길에 따라 이 글의 향후 행방은 갈린다. 그래서 그저 적는다. 그래서 그저 한 자 한 자 조심스레 적는다.
어떻게 될까.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
이제 이 지루한 이야기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