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_후회라는 것에 대한 고찰
그는 많은 선택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그 선택은 갈림길, 혹은 세 갈래, 네 갈래길의 모습으로 나타나 한 가지의 선택을 강요한다. 주어진 선택지를 전부 선택한다는 길은 보통 존재하지 않는다.
선택을 강요받는다. 그리고 결국 무엇인가를 선택했을 때, 상당히 불편한 사실 하나를 맞이한다.
강요로 시작된 선택이지만, 그 선택의 결괏값은 본인이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괏값이 좋은 경우도 당연히 있다. 불편한 것은, 원해서 한 선택이 아니었음에도 좋지 않은 결괏값 또한 본인이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때문인지 그는 늘 삶 자체가 굉장히 불친절한 것이라 생각하였는지 모르겠다. 선택을 강요하며, 그 결괏값 또한 어떠한 대가를 치르던 전부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공허한 시간을 맞이할 때면, 후회에 잠긴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더 나은 결과가 있었을까. 아예 '고르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었을까, '전부 고른다'의 선택지는 없었을까.
당연히 그 후회는 어떠한 변화도 가져다주지 못한다. 영화 속에만 나오던 타임머신이 실재하지 않는 한, 결괏값은, 치렀던 대가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저 씁쓸한 회한만이 머리와 가슴에 남아 그를 괴롭히기만 한다.
꽤 많은 사람들이 삶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찬사를 즐겨 하지만, 정작 그의 삶에는 아름다움은 흔하지 않은 것이 되었기에,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되었기에.
시간 속에서, 이 남자는 다시 질문 하나를 허공에 던진다.
왜 후회하는가?
혹자는 이야기한다. 최선을 다했다면 후회는 없는 것이라고, 후회하는 이유는 그때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사실이다.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 남자는 다시 질문 하나, 허공에 던져본다.
정말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 죽을 정도로 부딪혀보지 않았는가?
아니다.
그는 최선을 다 했다. 몸이 부서질 정도로 부딪혔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았다. 돈을 썼고, 마음을 찢었고, 몸을 던졌다. 잠을 줄였다. 그때의 그 남자에게는 더 이상 노력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그만큼 그는 몰려 있었다. 그래서 이 남자는 다시 질문 하나 더, 허공에 던진다.
무엇을 후회하는가?
하나하나 목록을 만든다. 어릴 때 담배를 배운 것, 그 나라에서 수많은 폭력과 상처에 자신이 물들어버린 것,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기꺼이 온몸으로 받아들인 것, 상처받을 것이 뻔한 사랑을 해 본 것, 죽음을 선택하려 한 것. 몇 가지의 예시뿐이지만, 더 많은 목록이 이 남자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정말 후회하는가?
이 질문에 이 사람은 잠시 멈춘다.
정말 후회하냐고?
아니, 후회하지 않는다.
모순일 수 있지만, 이 남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후회하지 않는다. 경험이었다.
사람을 경험했다. 수많은 인간 군상을 겪어가며 경험했다. 친구라는 것을 경험했다. 삶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나의 온몸과 마음으로 경험했다. 그대를 사랑했다. 그대를 사랑했다. 삶을 사랑했다.
그래, 후회하지 않는다.
어쩌면 후회라는 것은 선택에 대한 후회가 아닐지도 모른다. 온전히 본인의 의지만으로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 삶의 강요, 상황의 강요, 사람의 강요, 돈의 강요, 수많은 강요들로 이루어진 선택에서, 후회까지 당사자의 몫으로 남겨둘 수는 없다.
선택의 후회가 아니다. 어쩌면 그저 그리움일 수 있다. 이 남자에겐. 이 사람에게는 그저 그리움일 수 있다.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친구와 웃으며 첫 담배를 입에 문 그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
폭력에 젖어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과 사랑이 필요했던 그 싱그러웠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
상처받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뜨거운 마음으로 그대를 사랑했던 불타던 나에 대한 그리움.
처음이자 마지막인 처음 그 밤, 기대와 두려움을 반 씩 가진 채, 그대를 안았던 밤, 그때의 나에 대한 그리움.
그래, 그리움이다.
왜 그리워하는가? 왜 이 모든 순간을 그는 그리워하는가.
아름다웠다. 그래, 매일 눈물을 흘릴 만큼 괴로운 시간들이었지만, 충분히 아름다웠다. 충분히 빛났다. 충분히 사랑했다.
그래,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시절은 그 시간을 보내고 있는 누군가는 잘 인지하지 못한다. 그저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그 시간이 아름다울 수 없다.
미래의 그는, 그 시절이 충분히 아름답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시절의 이 아이는 아름다움을 만끽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리운 것이다. 그래서 후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아름다웠던 날을 정작 본인은 만끽하지 못했으니, 아름다운 날이 아름다운 날인지 모르고 이 아이는 매일 밤을 울며 지새웠으니, 그래서 아쉬운 것이다.
그래, 아름다워서, 너무 아름다워서.
지금도 이 남자는 아름다운 날을 보내고 있다. '있을 수 있다.'라고 적었던 문장을 급히 수정한다.
이 남자의 날은 지금도 아름답다. 정작 당사자는 고통과 눈물로 새벽과 낮을 보내고 있을지라도, 변하지 않는 하나의 사실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날이다.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만들어진 한 남자이다.
그래서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삶으로 한 발자국 내딛는다. 죽음은 아름답지 않으나 삶은 아름답다.
피가 튀고, 살점이 벗겨지고, 온몸의 뼈가 부서지는 것이 삶일지라도, 삶은 죽음보다 아름답다.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니 삶으로 한 발자국 옮기는 그는 아름답다.
정작 본인은 그렇게 느낄 수 없을지라도, 내일의 그가 어제의 이 남자에게 이야기한다.
충분히 아름답다고, 충분히 예쁘다고. 충분히 멋지다고.
그저, 아름다울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