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세 번째 이야기. 사랑 이야기.
멜로 영화를 좋아한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이야기. 그 사람 덕에 울고 웃는 이야기.
만남과 이별 그 사이에서 반복되는 수많은 갈등과 분노와 눈물. 판타지 영화나 히어로 영화보다도 훨씬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물론 영화처럼 멋진 대사와 이야기는 없는 일상이라도 삶과 가장 닮아 있는 이야기이다.
사람은 사람 때문에 살아간다. 사람은 사람 때문에 죽기도 한다. 이것이 인간관계의 함정이 아닐까 한다.
설레고, 사랑하고, 눈물을 흘리고, 괴롭다. 미워한다, 증오한다. 심지어 죽기를 바란다. 한 때는 삶에서 가장 큰 위치를 차지했던 한 사람이 순간 삶에서 이탈하며, 그 빈자리에는 무엇으로도 메꾸어질 수 없는 큰 흉터가 생긴다. 보통의 영화에서는 일련의 일들 후 다시 만나거나, 혹은 영원한 이별을 선택하는 장면을 끝으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그러나 삶은 영화가 아니다. 영화일 수 없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 음악과 함께 모든 것이 그 시간에 멈춰버리는 영화와는 다르게 삶은, 일상은 결국 계속 흘러간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속절없이 흘러간다.
사랑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의 이야기도 너무나 많이 들린다. 그 정도로 사랑했으니까. 그 사람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으니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 때문에 다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린다. 가장 비참하고,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다가와 준 한 사람 덕에 다시 살아내는 사람의 이야기도 들린다. 숨겨둔 재벌가의 자식이어서 한 순간에 인생이 변하는, 소위 말하는 ‘계층’이 변하는 드라마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삶은, 상황은, 일상은 그대로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랑 하나 때문에 삶의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사랑 하나 때문에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한다.
맛있는, 고급진 식사가 아닐지라도, 멋진 외제차로 떠나는 드라이브가 아닐지라도. 열 평도 되지 않는 비루한 방 안에서 라면 하나를 끓여 둘이 나누어 먹을지라도, 멋진 자동차 대신 둘이 손을 꼭 잡고 한강 변을 거닐지라도, 그저 둘이기에 아름답다. 서로만의 암호와, 서로만 아는 표정, 이 세상에서 단 둘만 아는 수많은 밤을 함께 보내며 그들은 죽음 대신 삶을 노래한다.
그 아름다운 사랑을 질투한 세상이 그 둘을 다시 각자로 나눌지라도, 그 아름다움의 흔적은 각자의 심장 근처에 고스란히 자리 잡는다. 이제 서로였던 나와 너를 다시 볼 수 없다고 할지라도 그 아름다움의 흔적은 그들의 일상에 완벽히 자리 잡는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에 각자의 마음 한편에 아린 흔적을 남긴다. 둘이 걸었던 길, 그대가 좋아했던 음식, 둘이서 마셨던 커피의 향, 서로가 하나가 되었던 그 밤, 그 순간을 마주할 때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며, 아린 가슴을 안고 살아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말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한 가지를 알게 된다. 둘이 가던 식당과, 둘이 걷던 거리, 둘이 함께하던 공간을 부지불식간에 찾아갔을 때, 그리고 자리에 앉은 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둘이 함께 했던 공간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고, 어느 순간 한 가지를 깨닫는다. ”괜찮아졌구나".
당장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선에서 방황하던 사람은, 상실을 경험하고, 모두가 죽을 것이라 예상했던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시 하루를 살아낸다. 혼자 쌀국수를 먹고,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청음 카페에 방문한다. 그저 하염없이 걸으며 생각을 수납장에 차곡히 정리하고, 집에서 빨래와 청소를 하고, 지친 몸을 누인다. 상실은 잔인하지만, 칼로 베인 듯 고통스럽지만, 상실이 지나간 자리에는 굳은살이 생긴다. 그 어떠한 상실에도 이제는 상처를 받지 않겠다는 듯.
다시 사랑을 준비한다. 단 한 번도 사랑이 그에게 등을 보인 적이 없는 듯 사랑을 준비한다.
그저 그렇게 나아간다.
사람은 사람 때문에, 사랑 때문에 죽을 수도 있으며, 살아갈 수도 있다.
잔인하고 비효율적인 마음이라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우니까, 그 경계선 위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내며 삶으로 한 발짝 옮기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하루를 더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