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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da Jul 30. 2023

[서평]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지문 같은 것

김숨 《L의 운동화》


신촌을 갈 때면, 이한열 기념관과 종종 마주하게 된다. 이름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 알려고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런 세대인 것이다. 그렇게 잃어버린 운동화 한 짝처럼 차츰 잊혀 갈 것만 같던 청년 이한열의 이야기. 그의 이야기가, 남은 한 짝의 운동화로 복원되었다. 경험한 적 없음에도, 잘 알지도 못함에도, 차오르는 뭉클함과 감사함은 어찌할 수 없다.

  

1. 운동화가 있어야 그것을 신고 집에 갈 텐데 싶어서……. (p.270)

하지만 이한열 열사님은 끝내 집에 가지 못하였다. 한 짝 밖에 안 남은 운동화는 그렇게 홀로 세월을 견뎌야 했다. 자그마치 28년 동안. 긴 시간의 결과는 냄새로 남았다. 하지만 보통의 인공 유기물과는 달랐다. 'L의 운동화는 자연 유기물인 짐승이 부패하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p.151) 28년 전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이 운동화 속에 스며든 탓이었을까. 아니면 L을 기억하고자 하는 남은 이들의 소망 같은 환후(幻嗅)였을까.

  

2. L의 운동화가, L을 넘어서서는 안 된다. L을 집어삼켜서는. (p.110)

있는 그대로의 L을 운동화에 오롯이 담아내는 일. 하지만 '복원해야 하는 것은, 28년 전 L의 운동화가 아니다. L이 죽고, 28년이라는 시간을 홀로 버틴 L의 운동화다. …(중략)… 28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내야 하는 것이다.' (p.100) 그런 운동화 복원에 가장 힘이 들었던 부분은 밑창이라 했다. 산산 조각난 밑창 부분은 마치 누군가 일부러 짓이긴 발자국 같았다. L이 걸어왔던 모든 발자국을 부정하는 듯한, 그런 짓이김. 28년은 운동화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을 아무도 모르게 변색시키고 부식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으므로.

  

3. L이 신었던 운동화가, 한때 저의 운동화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p.216)

삼화고무에서 나온 흰색 타이거 운동화. L의 운동화는 그 시절 우리 모두의 운동화였다. 사라진 한 짝은, 기억 속에서 사라진 모두를 대변하는 듯했다. 하지만 기억나진 않지만 잊히지 않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흔적은 남았다. 운동화는 저마다의 발자국을 갖고 있었고, 그 결과 현재 우리는 지난 우리 모두의 발자국 위에 서있다. 그러나 어떤 것은 잃어버렸으며, 어떤 것은 짓이겨졌다. 그리고 이 모든 자국은 발을 떼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돼 있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L의 운동화는 세대를 걸쳐 다시 복원될 것이다. 한 세대, 두 세대를 걸쳐서.' (p.224) 작가의 말처럼 복원은 끝이 아니라 과정이기 때문이다.

  

4. "저 운동화가, 우리 아들이 신었던 운동화라고 하니까. 우리 아들의 운동화인가 보다 해요……." (p.124)

이한열 기념관에 가보면, 실제로 복원된 타이거 운동화를 볼 수 있다. 거울에 비치는 밑창 또한 볼 수 있다. 거울 속 밑창은 좌우가 바뀌어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건 L의 운동화다. 수많은 걸음걸음마다 두고 온,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지문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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