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해지고 싶은 소녀의 이야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내 이름은 너무 평범하다.
성도 이름도 지나치게 흔하고, 센소리나 된소리 하나 없다. 비슷한 이름도 많아서 누군가에게 소개할 땐 두 번, 세 번 반복해 말해줘야 한다.
몇 해, 아니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특별한 삶을 꿈꿨다. 남들보다 앞서가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래서 흔해 빠진 내 이름이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름을 바꾸면 내 삶이 조금은 특별해지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조금 더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왜 나의 부모는 이토록 창의적이지 못한 이름을 지어준걸까. 원망도 많이 했다.
영화 ‘레이디 버드(Lady Bird)’의 크리스틴(시얼샤 로넌)도 이런 생각을 한다. 그가 현실의 청소년이 아니라 영화 속 주인공인 이유는 이런 고민에서 멈추지 않고 스스로에게 이름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레이디 버드’라는.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던져버리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기로 한 레이디 버드는 그 나이라서 가능한 온갖 크고 작은 사고를 친다. 엄마에게 반항하고, 좋아하게 된 남학생과 연애하기 위해 그의 친구에게 부잣집 딸이라는 거짓말도 한다. 사는 곳인 새크라멘토를 벗어나겠다고 대도시 대학에 무작정 원서를 쓰기도 한다.
레이디 버드가 사고를 치는 동안 그와 가장 많이 부딪히는 인물은 바로 엄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엄마와 딸의 관계는 어떤 가족보다 끈끈하면서 충돌도 많은가보다.
이미 여자로 인생을 살아본 엄마는 딸이 앞으로 겪을 고충을 안다. 그래서 쉬운 길을 제시해주지만, 인생이란 본디 겪어보기 전에는 모르는 법. 딸들은 엄마 말을 들을 마음이 없다. ‘엄마와 나는 달라’ 혹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엄마가 내 인생에 간섭하지 않기를 바란다.
레이디 버드도 엄마와 여러 갈등을 겪으며 ‘미친 듯이’ 싸운다. 하지만 미워하는 감정은 오래 가지 않는다. 말다툼을 하다가도 예쁜 옷을 발견하면 동시에 “이 옷 예쁘다”며 방금 전의 싸움을 잊는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한국의 속담은 서양에서도 통하는 건지, 레이디 버드는 엄마의 극심한 반대에도 결국 자신이 원하는 삶을 꾸리게 된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향하고 그곳에서 부모가 준 이름 크리스틴에 비로소 애정을 느낀다.
영화는 시종일관 관객의 웃음보를 자극한다. 감독인 그레타 거윅이 배우로 출연한 영화 ‘매기스 플랜’, ‘프란시스 하’처럼 소소한 이야기들이 유쾌하게 러닝 타임을 채운다. 악동처럼 보일 수 있는 레이디 버드 캐릭터는 시얼샤 로넌의 적절한 연기로 미워할 수 없는 악동으로 그려진다.
한 가지 씁쓸한 것은, 20대 후반이 돼서 알아도 늦지 않을 깨달음을 레이디 버드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깨우친다는 점이다. 학창 시절을 너무나도 파란만장하게 보냈기에 남들보다 빨리 성장한 탓일 거다.
레이디 버드는 뉴욕에서 만난 남자에게 자신의 고향을 새크라멘토가 아닌 샌프란시스코로 소개하는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허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질문은 사실을 알기 위한 목적보다는 관심을 표하기 위한 또 다른 방법일 뿐이라는 깨달음 때문일 거다. 거짓말은 좋지 않지만 굳이 모든 것에 솔직할 필요 없다는 진실을 알게 됐기 때문일 거다.
레이디 버드는 영화 말미,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것들과 마주한다. 평범하고 뻔해 보여 싫었던 것들이 환경이 바뀌니 새롭게 보인다. 그리고 그의 얼굴엔 또 다른 고민이 드리운다. 감히 예상하자면 레이디 버드는 여태까지 특별해지기 위해 몸부림 쳤지만 아마 앞으로는 평범해지기 위해 있는 있는 힘을 다할 것이다. 대부분의 어른이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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