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 번째 도쿄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한다. 내 머릿속은 대체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편이기 때문에 종종 이렇게 비워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공원, 카페, 바다 다 좋지만 그중에서도 제일은 좋아하는 그림 앞에서 멍 때리기.
뉴욕에 혼자 막 발을 내디뎠을 때, 메트에서 본 한 그림 앞에서 오랜 시간 멍을 때렸다. 마티스를 크게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지만 유독 그 그림에 마음을 뺏겨 앞에 몇 시간이고 앉아 있었다.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보고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는데 그림이 커다란 위로를 건네는 듯했다. 그동안 나를 짓누르고 괴롭히던 생각들이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도쿄가 코로나 이후 나의 첫 행선지가 된 건 아마 8할이 마티스 때문일 것이다. 도쿄도 미술관에서 열리는 마티스 전. 뉴욕에서 보았던 그 그림을 다시 볼 순 없겠지만 그의 다른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내친김에 도쿄 내 미술관을 싹 돌아보고 오자는 계획도 세웠다.
대학생 때 으레 떠났던 여행과는 달리 이번 여행은 혼자. 생각을 비우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된 여행이니 일기장 한 권, 책은 무려 두 권을 챙겼다. 그 책들이 그저 짐이 될 것이라는 미래를 알지 못한 채. 적막보다는 대화를, 혼자 보다는 사람으로 가득 채운 여행을 할 것이라는 것을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