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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 Feb 05. 2024

시부야 터프 걸

도쿄에서 길 찾기 

2016년, 그러니까 무려 8년 전의 도쿄는 친구와 함께였다. 맞는 길을 두고도 다른 길로 자주 헤매곤 하는 나는 친구에게 길 찾기를 모두 맡겨버렸다. 하지만 2023년의 나는 혼자이고, 길치에다 방향치. 게다가 예약해 둔 숙소로 가려면 시부야 역에서 출구를 찾아야 했다. 도쿄의 지하철은 서울보다 복잡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본어로 길을 물을 줄 안다는 것. 


시부야로 향하는 기차표


시부야 역은 유동인구가 많으니까 정 못 찾으면 물어보자. 한 손엔 구글 맵을, 다른 한 손엔 캐리어를 들고 왼쪽 오른쪽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멈춰 서서 한숨 한번 쉬고, 이마에 손을 짚으며 고뇌하는 내 모습은 누가 봐도 영락없는 여행자. 누군가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도움을 주지 않을까..? 싶었지만 사람들은 곁을 지나쳐가기 바빴다. 결국 걸어가는 한 사람을 붙잡았다. 


"저기.. 죄송한데요.." (あの。。 すみません。。)

"이 출구로 가고 싶은데요..."  (この出口に行きたいのですが。。)


길을 물은 사람은 단발머리의 귀여운 여자. 구글맵을 같이 한참 들여다보더니, 결국 출구까지 길을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저는 한국인인데, 길 찾기가 너무 어렵네요.." 묻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꺼내는 내게 그녀는 일본어를 어떻게 할 줄 아냐고 물었다. 


"아 중학교 때 嵐를 좋아해서 공부했어요. 지금은 많이 잊어버렸지만.." 

뉴욕에서도 몇 번이나 써먹었던 이 문장. (내가 만난 대부분의 일본인은 완벽한 일본어가 아니더라도 일본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 자체를 매우 놀라워했다.) 수줍게 그들을 언급하는 내게 그녀는 특유의 리액션으로 자기도 한국을 몇 번이나 갔었다고 말했다. 도쿄에선 디즈니랜드를 꼭 가보라는 말과 함께. 









"좋은 여행 돼요! " 


출구를 나가니 큰 고가도로와 조그만 천이 보였다. 비로소 도쿄에 왔다는 것이, 혼자 여행이라는 것이 실감 난 순간이었다. 











7년 만의 시부야

첫 식사로 츠케맨을 먹고 다시 돌아간 시부야 역. 숙소까지는 걸어서 27분이었고 운동에 미쳐있던 나는 그 정도는 걸어서 할만하다는 오만한 생각으로 길을 나섰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 꿈틀꿈틀 솟아오르는 나 자신에 대한 불신. 이 방향이 맞는가-에 대한 의심으로 근처에서 교통안내를 하고 있던 아저씨에게 길을 다시 한번 확인받았다. 


"감사합니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인사하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내게 아저씨는 엄지를 척 내밀었다. "터프 걸! 간바레 (힘내)(タフガール!頑張れ!)!" 그 무더운 날 먼 곳을 걸어가는 나에게 아저씨가 건넨 그 말들이 어쩐지 내 여행 전체에 건네는 응원처럼 느껴졌다. 


물론, 10분 걷고 바로 후회한 건 안 비밀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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