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a Feb 05. 2024

오지라퍼라도 될 걸 그랬어

미술관, 그리고 도쿄식당에서 합석하기

우에노 공원 근처에는 여러 미술관이 모여있다. 그중 내가 가기로 마음먹은 곳은 도쿄도 미술관과 국립서양미술관. 이곳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카야바 커피>라는 곳이 있다. 카페 겸 가벼운 식사 종류를 판매하는 곳인데 꽤 유명한 곳이어서 예약을 미리 해두고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어떤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가더니 곧바로 다시 나왔다. 누가 봐도 여행자의 모습이었다. 유러피안인지 아메리칸인지 아무튼. 나는 그녀에게 귀띔을 해주었다. "혹시 예약했니? 여긴 예약해야 할 거야." 내 말에 반색하던 그녀는 정확히 어느 사이트에서 예약을 해야 하는지 물었다. 나는 구글맵에 첨부된 링크를 알려주었다. 곧이어 점원이 나왔고 그녀는 내 바로 다음 타임에 (10분 뒤) 이름을 남겼다.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그녀는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식당에서 혼자 식사를 할 때까지 나는 합석을 제안하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가끔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엄청난 호감을 느끼게 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그랬다. 대화하면 분명 즐거울 것 같은 사람. 게다가 나는 큰 책상을 혼자서 차지하고 있었다.





포슬포슬한 에그산도를 앞에 두고 문이 열릴 때마다 그녀가 들어오는지를 확인했다. 바로 다음 타임에 예약했으니, 오면 합석을 제안해 봐야지. 혼자 왔는지, 오늘은 어딜 여행할 계획인지 대화하면 재밌겠다. 아, 나 너무 오지라퍼인가.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직원에게 혹시 그녀가 오면 자리를 합석해도 되는지 물었다. 안타깝게도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지만. 


결국 그녀는 예약한 시간에 오지 않았다. 더 이상 그 이름이 기억나진 않지만, 이날을 계기로 나는 내 안의 어떤 수줍음을 깨부수고 먼저 말 걸기 장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정현종 시인의 <섬>이라는 시에 이런 표현이 있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그건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 즉 그 사람의 일생이 함께 오기 때문이라고. 내가 살아보지 못한 세계의 사람이, 그 사람이 가진 이야기와 눈빛이 궁금하다. 카야바 커피 앞 그녀를 다시 만나지 못했을 때 내가 아주 오랫동안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걸 알았다. 아마도 평생. 




작가의 이전글 다 짝이 있는데 나만 없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