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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 Feb 06. 2024

셰프의 시라스 파스타

Bar nyta를 기억하며

요요기 하치만 역 근처에 조그만 이탈리아 음식점이 있다. 이름은 Bar Nyta. 구글 리뷰도 몇 없는 곳. 처음 이곳을 방문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D언니와 호스텔 근처에 괜찮은 맛집이 없나 어슬렁거리던 찰나에 발견한 것이다. 몇 개의 바 자리와 조그만 테이블 몇 개가 전부인 곳. 손글씨가 가득한 메뉴판은 온통 일본어뿐이어서 사진을 찍어 번역기를 돌려야 했다. 주문을 받던 스태프 언니는 우리에게 어떻게 왔냐고 물었다. 동네사람들이 주 고객인 이곳에서 번역기를 쓰는 우리는 누가 봐도 외국인. 여행을 왔고 숙소가 근처라고 하자 좋아하는 한국 배우가 있다며 그 이름을 알려주었다. (언니가 좋아하는 배우는 정해인, 안보현, 그리고 박서준이었다.)


우리가 주문한 메뉴는 토마토 바질 부르스게타와 나폴리탄, 닭고기 스테이크. 그리고 맥주! 우연히 들어간 것 치고는 모든 음식이 훌륭했다. 특히 나폴리탄. 좋아하는 배우인 미츠시마 히카리가 출연하는 드라마에서는 나폴리탄이 꽤 자주 나온다. 주인공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나폴리탄이라는 설정인데, 사실 일본 드라마에서는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메뉴이기 때문에 익숙한 이름이었다. 토마토 베이스의 소스를 선호하지 않는 탓에 꽤 오래 들어본 메뉴임에도 이번이 첫 시도였지만. nyta의 나폴리탄은 쫀득쫀득한 특유의 식감이 있었고 그동안 먹어본 파스타의 그것과는 달랐다. 





다다음날 D언니를 우에노로 배웅한 후, 혼자 점심을 먹으러 nyta에 다시 방문했다. 행복했던 그 저녁의 기억으로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몇 없는 구글 리뷰에 있는 시라스 김 파스타의 사진은 먹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비주얼이었다. 인상 좋은 스태프 아저씨에게 파스타 사진을 보여주면서 주문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시즌 메뉴라 지금은 판매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쉬운 마음으로 언니랑 먹었던 나폴리탄을 주문하고 기다렸다. 


처음에도 이번에도 내가 앉은자리는 셰프가 요리하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 바 자리. 구경하며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셰프가 "시라스~~~~ 시간~~~~?" 하고 물었다. 음 샐러드에 시라스가 들어가는데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단 이야기인가? 단어와 뉘앙스로 눈치껏 어림짐작을 하고 괜찮다고 대답했다. 시라스 김 파스타를 먹지 못해도 상관없을 만큼 nyta의 나폴리탄은 이미 날 행복하게 만들 들기에 충분했으므로. 



셰프의 시라스 김 파스타 

10분쯤 지났나, 내가 받은 건 시라스와 김이 가득한 파스타였다. 나폴리탄이 아니라 너무 놀라서 "시즌 메뉴인데 만들어주신 거예요?" 했더니 웃으면서 그렇다고 하셨다. 아까 그 질문은 시라스 때문에 파스타가 조금 오래 걸릴 수 있는데 괜찮냐는 의미였던 것이다. 내가 여행자인 것을 알고 셰프가 마음을 써준 것이다. 살면서 예상치 못하게 마음을 건네받을 때가 있다. 그것도 여행지에서. 나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한 후 파스타를 남김없이 먹었다. 행복해져서 맥주도 시켰다. 마음 가득 행복으로 가득 찬 식사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며칠 전에 친구랑 왔었는데 너무 맛있고 행복했던 기억이라 또 왔어요. 다음에 일본에 왔을 때 또 오고 싶어요.' 떠나기 전 파파고로 번역한 그 문장을 주문받은 아저씨에게 보여줬고, 아저씨는 셰프에게 그 말을 전했다. 언제가 될진 몰라도 도쿄에 다시 가게 된다면 꼭 다시 방문하고 싶었다. 일본어 공부를 좀 더 해서 셰프와 아저씨, 스태프 언니와 좀 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하지만 지난 1월 31일 일자로 Bar nyta는 영업을 종료했다. 오랜만에 들어간 인스타그램 계정이 그 소식을 알리고 있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마지막으로 Bar nyta를 추억하는 글이다. 도쿄의 요요기 하치만이라는 멋진 동네에 세심한 셰프와 인상 좋은 아저씨, 그리고 귀여운 스태프 언니가 있던, 훌륭한 가게가 사라졌음을 슬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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