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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렌의 가을 Jun 28. 2019

메이크업이라는 세계

쉽지 않네요 

 


모르는 세계에 대해 사람들은 호기심을 갖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십 대 초반, 화장을 처음 시작했을 때, 관심이 생기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 어느 날 하루, 백화점에 가, 한 브랜드에서 스킨, 로션, 메이크업 베이스, 파운데이션을 샀다. 메이크업 베이스 중에는 보라색도 있었는데 '이거 바르면 얼굴이 보라색이 되는 거 아니야?' 하고 의아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나마 거부감이 덜했던 녹색 베이스를 사면서도 반쯤 의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나올 뿐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매일 하는 많은 것들을 어디서 배웠는지 잘 기억나지 않듯이, 어떻게 화장을 배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유튜브 같은 건 없던 때. 여기저기에서 본 것들을 바탕으로 했을 것이다. 그랬던 십여 년의 시간을 거쳐 지금의 나는 화장을 아주 옅게 할 뿐이다. "이건 꼭 쓰셔야 해요"라는 판매원의 말을 듣고 그때 손에 들고 나왔던  메이크업 베이스나 파운데이션도 쓰지 않는다. 아주 단순한 방식의 메이크업에 정착했다고 할까, 마음이 편안한 정도로 만족하고 있다. 


지나치게 타인을 의식하면서 불편을 자초하는 메이크업이 아니라면, 나는 화장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얼굴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을 발견하고 화장을 통해 그것에 정성을 표한다는 것도 좋아 보인다. 긴 속눈썹이 자랑스러운 사람이라면 매일 아침 마스카라를 공들여 바를 수 있다. 아니, 굳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자신의 얼굴을 더 마음에 들게 만들려는 노력 자체도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마스카라 이야기가 나와서 말하자면, 속쌍꺼풀의 눈을 가진 나는, 마스카라는 포기했다. 아마도 눈의 형태상 그럴 수밖에 없는지, 눈 아래에 마스카라가 무조건 번진다. 경험상 절대 번지지 않는다는 마스카라를 써도 결국은 늘 번지고 말았다. 거울을 보면 판다곰이다. 어느 날, 초록색 실크 원피스를 입고 저녁이 되어 거울을 봤을 때 판다곰이 된 눈을 발견하는 것은 그야말로 당혹스럽다. '조명이 어두웠기를...'하고 속으로 바랄 뿐이다. 사실 기분을 낼 뿐 마스카라가 그렇게 잘 어울리지도 않는데. 


지금의 메이크업과는 형태가 다르지만, 과거 전사들은 전쟁에 나가기 전 얼굴에 칠을 하기도 했다. 아마도 전장에 나가는 상황에서, 자연인으로서의 자신이 가지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전사로서의 자아로 자신을 다시 규정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과거의 전사들뿐만이 아니다. 김연아 선수의 스타일링을 볼 때마다 인상 깊었던 나는, 그녀가 경기 전 자신이 직접 메이크업을 하며, 그 시간이 그녀에게 특별한 시간임을 알게 되었다. 화장을 하는 시간은 오직 그녀만의 시간이며, 한 시간 정도 화장을 하면서 그날의 경기를 위한 마음 가짐을 다진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김연아 선수가 만들어내는 감동과도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그녀의 움직임에서는, 다른 어느 누가 아닌 자기 스스로의 손으로 응답한, 하나의 세계로 완전히 들어가기 위한 또 다른 자아의 헌신과 절박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화장을 해 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좀 더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내가 마스카라를 포기한 것처럼, 자신이 편안한 방식과 어딘지 모르게 잘 어울리는 색조들을 알게 된다. 말하자면 나 자신을, 나 자신으로 느껴지게 하는 어떤 모드(mode), 상태 말이다. 


얼마 전 고등학교 미술반 학생들에게 특강을 한 적이 있었다. 강의를 마치고 가방을 정리하고 있는데, 한 여학생이 다가왔다. "선생님, 눈동자가 되게 예뻐요. 이거 말해 주고 싶었어요." 지나가는 말이었겠지만 그 후로 거울을 볼 때마다 내 눈을 한번 더 쳐다보게 되는 나 자신을 깨달을 때가 있다. 참, 눈동자를 위한 에센스라도 있으면 좀 써 주고 싶은데, 그런 것은 없으니 조금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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