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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렌의 가을 Oct 17. 2018

새벽의 스파게티



밤낮이 바뀐 시간이 이어지자 피로함이 더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느 날, 다시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드는 사이클을 회복하기로 결심했다. 물론 결심만으로 행해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어느 지점에서인가 시작을 해야만 한다. 


'좋아. 오늘은 밤에 자도록 해야지.'하고 누워 보았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는다. 조명을 낮추고 베개를 다듬는다. 오랜만에 향초를 켜 본다. 기분 좋은 크림 향이 퍼지자 곧 초를 끈다. 잠시 눈을 감고 있어 본다. 그래도 잠은 오지 않는다.


잠이 오지 않을 때 억지로 자려하지 마세요,라고 언젠가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다시 작은 조명을 켜고 침대 건너편에 쌓인 책 중에서 몇 권을 챙겨 온다. 한동안 책을 읽지 못했다. 예전에 이미 읽은 책인데도 새롭게 다가온다. 그때 그어놓았던 줄들, 메모들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 보니 정말 중요한 부분인데 아무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곳들도 있다. 마치 다른 사람이 책에 적어놓은 메모를 읽듯이 과거의 나의 흔적을 바라본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저 상투어일지도 모른다. 때로 사람은 변화한다. 자연이 변화하듯이. 


나는 이제 완전히 깨어있다. 책이 나를 다시 깨웠고, 한동안은 이 상태로 잠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이 들었을 이 새벽, 무엇을 하면서 잠을 청해야 할까. 


문득 얼마 전 사두었던 버섯이 생각났다. 그 버섯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미치자 냉장고 문을 열고 재료들을 찾아본다. 버섯, 우유, 버터, 생크림. 밤낮이 바뀐 동안 아침을 제대로 먹지 않았다는 생각이 났다. 


내일을 위해 무언가를 만들자. 나는 부엌의 불을 켜고 커다란 팬을 꺼냈다. 버터를 잘라 녹이고 버섯을 볶는다. 조금만 더 지났으면 시들어 버렸을 것만 같은 버섯이었다. 우유를 붓자 버섯의 색이 깃든 크림소스가 만들어졌다. 소스가 끓는 소리, 고소한 냄새가 새벽의 고요한 집안을 채웠다. 찬장 속의 스파게티면만 삶는다면 간단히 식사를 할 수 있겠지.


크림소스가 담긴 팬을 한쪽으로 옮기고 유리 뚜껑으로 잘 덮어둔다. 아주 작은 것인데 내일에의 기대가 생긴다는 것이 신기하다. 부엌의 불을 끄고 다시 침대 속으로 들어간다. 


스르륵, 그 후 언제 잠에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이 글은 낮에 쓰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잠을 잘 자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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