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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렌의 가을 Nov 02. 2017

끝없는 화해

카페의 창밖을 별 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앞머리가 정갈하게 내려진 한 젊은 여자가, 검정색의 굵은 테 안경 너머 카페 안을 들여다본다. 아직 얼굴이 앳되다. 직장에서 일괄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두터운 남색 패딩 조끼를 입고 있다. 오늘은 올해 가장 추운 날이라는 일기예보가 생각났다. 그녀는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흰색 줄무늬 슬리퍼를 신고 있다. 어딘가 근처 사무실에서 잠깐 밖에 나온 것 같다.


잠깐 망설이다가, 그녀는 카페 안으로 들어온다. 커피를 주문한 그녀는 등을 보인 채 바(bar) 자리에 조용히 앉는다. 두툼한 조끼 아래로 그녀의 등이 약간 굽어져 있다. 짙은 갈색의 도자기 컵이 그녀 앞에 놓인다. 따뜻한 커피. 그녀는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다가 어느 순간 커피 잔에 입술을 가져다 댄다. 그녀는 천천히 커피를 마신다.


검은 양말을 신고 앞뒤가 뚫린 휑한 슬리퍼를 신은 그녀의 발이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실내에서 일할 때 편하기 때문이겠지. 그녀는 잠깐 밖에 다녀올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카페를 보게 되고 자신에게 필요했던 커피 한 잔의 시간을 떠올렸을 것이다. 잠시 숨을 돌리는 시간.     

 

는 그녀의 등을 보면서 주말의 그녀는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투박하고 낡은 조끼가 아니라, 찬바람에 발등이 드러나는 플라스틱 슬리퍼가 아니라, 그녀가 직접 고른 색의, 모양의, 주말의 옷차림이었다면 그녀의 모습은 내게 어떻게 다가왔을까.          


때로 말할 수 없이 삶이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삶과 자꾸만 불화하는 것 같은 나. 그런 나 자신에 스스로 울컥 하는 마음이 든다.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모를 불쾌한 기분이 스멀스멀 내 안에서 올라온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는 막연한 느낌. 그럴 때면 나는 자꾸만 삶과 멀어지려고 한다. 삶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어딘가로 피하고만 싶다.    


힘을 내어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는 잠시 동안이라도 마음을 붙이고 있을, 정류장 같은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그녀와 나는 잠시 동안이나마 같은 지붕 아래에서 멈춰 있던 것 아니었을까.     


딘가 홀로 떨어져 나가는듯한 느낌이 들 때면,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는 삶과 악수해야 한다. 내게 있어 ‘해야 한다’라는 표현을 쓰게 되는 몇 안 되는 경우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몇 번이라도 그 화해는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화해해야 한다. 삶이란 그 화해의 방식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커피 한 잔일 수도 있고, 친구와의 대화일 수도 있고, 우연히 만나게 된 문장 하나일 수도 있다.


캄캄한 밤, 문득 동시에 켜지는 가로등 빛이 마음에 불을 켜는 것만 같이 느껴졌던 때가 있다. 싱거운 우연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그 빛이 순간 내게 전달했던 느낌은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다. 그것을 무엇으로 해석할까. 아마도 나는 삶과 화해하고 싶었던 것이다. 삶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삶을 찡그린 얼굴로 대하는 것을 멈추고, 그 안에서 반짝, 하는 순간을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낯선 눈빛으로 카페 안으로 걸어 들어왔던 그녀가 조금은 숨을 돌린 채 밖으로 나섰기를, 속으로 바래본다. 조금 더, 더 많이 화해할 수 있기를.




text by 엘렌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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