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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렌의 가을 Feb 04. 2018

스스럼없는 사이

마음에 드나요


지난가을, 가족의 한 지인분께 인사드릴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찾아뵙는 자리여서 무엇을 입을까 고민했다. 평상시의 나는 가볍게 입는 것을 선호한다.(지금의 나는 짙은 버건디색 면바지에 아이보리색 후드 점퍼를 입고 있다) 그런데 가족의 지인분, 고마운 분을 뵙게 된다니 다소 고민이 되었다.


격식을 갖추어 정장을 입을까 하다가 그분 댁이 전원에 있다는 것, 무엇보다 그분이 평소 소탈한 모습을 보여주셨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생각을 바꾸었다. 녹색 모직 코트를 내려놓고 편하게 입는 패딩 코트를 입기로 했다. 청바지와 면 티셔츠, 패딩 조끼를 입고 두터운 양말을 신었다. 마음이 편했다.


하루를 준비하며 옷을 입을 때 내가 가장 중시하는 느낌은 편안함이다. 편안함이라는 느낌은 상대적이어서 화려한 옷을 편안하게 느낄 수도 있고 오래 입은 옷을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내 옷장의 '화려함'은 번쩍거리는 장식, 매끄러지며 몸 선을 타고 흐르는 보랏빛 벨벳 드레스, 같은 것일 리는 없겠다. 있어서 나쁠 것은 없겠으나... 그저 조금 다른 색상, 디자인, 무늬, 장식 등이다)


그날, 그 시점, 그 마음, 상대와의 관계와 연결되어 느껴지는 편안함이라는 감각이 있다. 때로 기분을 상승시키기 위해 평소보다 화려한 옷을 입을 때도 있었지만 내가 얻은 결론은 그것이 마음을 북돋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거울 속의 나는 잠깐 달라 보일 수 있지만 집 밖을 나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알게 된다. 스스로 자신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을. 그 회피가 오히려 자신감을 앗아간다는 것을. 그런 경험 후 나는 스스로 자신을 인정하고 적절하게 살아갈 때 편안한 자신감에 도달할 수 있다는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 날 수수하고 편안한 옷을 입은 것은 정말 잘 한 선택이었다. 깜빡 잊고 있었는데 그 집에는 큰 풍산개가 있었다. 크다고는 하지만 네 살이어서, 강아지인 티가 흘렀다. 이미 몇 번, 그는 나를 제외한 가족을 만났었고 그래서 그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그 개를 자주 보지 못했고 이렇게 가까이 다가간 것은 처음이었다.


한동안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프로그램을 인상적으로 보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배운 훈련사의 말을 떠올렸다. '일방적으로 다가가려 하지 마세요' '귀엽다고 느껴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려고 하시지만 사실 그건 개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옵니다'와 같은 말들을 명심하고는 개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는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다가왔다. 나는 아무 표현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내 냄새를 맡게 했다. 그는 내 소매 끝에서 시작해 코트 안까지 코를 들이대며 냄새를 맡고 싶어 했다. 나는 코트의 지퍼를 열고 안 쪽까지 구경을 시켜주고 마음껏 냄새 맡게 해 주었다. 그가 묶여 있었으므로 내가 빙그르르 돌아 냄새를 앞뒤로 다 맡게 했다. 실컷 원하는 만큼 맡아봐. 내가 마음에 드는지 네가 봐봐. 혹시 네 마음에 들면 우리 같이 놀까?


다행히도 그는 내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드디어 그의 얼굴을 쓰다듬어주었을 때 내 눈과 마주친 그의 두 눈이 어딘가 내 마음을 건드렸다. 막 새로 만들어진 금빛 종이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동물의 눈은 어쩌면 이렇게도 맑을까. 그들의 눈을 순수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때로 인간의 착각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 눈빛이 전하는 범접할 수 없는 원초적 맑음 앞에서 그 순간만큼은 어떤 생각도, 근심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것은 기쁨이라는 언어로 말하기에도 어딘가 망설여지는, 더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감정이었다. 인간과 인간이 주고받기는 쉽지 않을 그 교류는 어딘가 감동적이라고 할만한 것이 있었다.


큰 풍산개가 갑자기 배를 보이며 내 앞에 드러누웠을 때, 나는 내심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용맹하고 사냥을 잘하는 개. 저 북쪽 지역의 혹독한 날씨를 견딜 수 있는 그의 힘찬 핏줄.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나는 반복해서 말하며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개는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서는 못 견디겠다는 듯이. 나는 그저 알려주고 싶어요, 내 마음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솔직한 감정이 상대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아끼는 이의 마음을 원하지만 한편 애정의 폭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상호 간의 감정의 정도를 조절하기도 하고 내 솔직함이 상대에게 상처가 될까 조심한다.


동물과 마음을 나누는 건 그런 면에서 다른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내심 사랑받기보다는 마구 사랑을 줄 수 있는 누군가를 원하는 것 아닐까. 사람이 태어나 사랑 받음으로써 사랑을 주는 법을 배우고, 또한 사랑을 주어 다시 사랑받는, 그런 선순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단 사랑의 총량을 늘리고 싶게 되고 계산 없이 사랑할 수 있는 동물과의 교류는 그런 면에서 상처받지 않으면서 자신의 삶에 사랑을 들이는 하나의 방식이 되는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큰 맘먹고 산, 값비싼 코트를 입었다면 그렇게 스스럼없이 그에게 다가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같이 놀고 싶으면서도 드라이클리닝을 언제 맡겼더라 하는 생각 등이 절로 떠오르는 것이다. 그랬다면 입꼬리를 올린 채 계속해서 침을 흘리며 펄펄 뛰며 좋아하는 그와 그렇게 놀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렇게 추억할만한, 좋은 기억을 쌓지 못했을 것이다. 거리를 두고 구경할 뿐 경험 속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갈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그와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즐거운지, 그 사실조차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때로 가진 것이 경험을 막을 때가 있다. 가졌다고 믿은 것이 알고 보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사람이건, 자연이건,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는 사이란 쉽게 가질 수 없는, 귀하고 드문 것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 잘 있으라고, 건강하게 지내라고 인사했다. 또 놀러 올게,라고 나름 얼러주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는 뭐래, 하는 듯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칫, 언제는 나랑 그렇게 재밌게 놀아주더니...'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한껏 올라가 있던 입꼬리는 내려앉아 있었다. 반가워하며 뛰어오르던 움직임이 사라졌다. 그는 다소 외면하며 나와 인사했다. 처져 있는 그의 꼬리가 눈에 들어왔다.


올 겨울 큰 눈이 내리던 어느 날 나는 그를 떠올렸다. 이 정도 날씨는 너끈히 버텨낼 수 있는, 그의 타고난 힘찬 기질은 인간의 힘 너머에서 아름답고 늠름하다. 그의 털은 얄궂은 내 코트처럼 드라이클리닝이 필요 없이(당연한 말이다) 부드럽고도 강하다.


봄이 되면 보러 갈게. 빈말 아니야. 보고 싶다. 컹컹 짖는 소리 속에 자리한 보드랍고 다정한 마음, 갈색빛 눈, 크림색 털, 유난히 색이 짙은, 세모난 귀 끝의 쫑긋하던 움직임.


오늘이 2018년 입춘(入春)이라고 한다.



by 엘렌의 가을
타이틀 사진: 가을산의 계곡 by 엘렌의 가을

후기:
얼마 전 소식을 들으니 그는 한참 털갈이 중이라고 합니다. 그 아름다운 털이 빠져 허전하게 느껴지더라도 조금만 견뎌 주기를... 자연은 어김없이 곧 새 털을 주실 테니까.  

실제로 보면 더 멋지다. 크림색 털, 분홍색 혀, 촉촉한 코, 마음먹고 짖으면 산을 울리는 목소리. 2017년 가을. 출처: 엘렌의 가을

참, 함부로 아무 개에게나 가까이 가시면 위험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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