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날이었다. 그 해 겨울 처음으로 맞이하는 영하 8도의 날씨였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기에 15분 정도면 되겠지, 하고 나는 밖으로 나섰다. 요가 수업이 개강하는 날이었다. 하필이면 이렇게 추운 날이라니.
나는 재빨리 차 안으로 들어가 시동을 켰다. 출근시간이 지난 뒤여서 차량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체육관에 도착하자마자 깜짝 놀랐다. 주차장 앞에 차들이 줄을 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적어도 스무 대는 될 것 같았다. 수업 시작 시간은 가까워져 오고 수업에 늦을 것은 분명했다. 첫 수업이라 늦지 않고 싶었는데, 하고 한숨이 나왔다. (그렇게 생각했으면서도 딱 맞춰 나왔으니 할 말이 없다) 게다가 오는 길에 길을 잘못 들어 한 바퀴 돌고, 줄 서 있는 차들에 놀라 차선을 잘못 탄 줄 알고 다른 차선으로 옮겼으나 결국 이전의 차선이 맞았고 그래서 한 바퀴 더 돌고, 다시 원래의 차선에 차를 대야 하기까지 했으니, 이미 늦을 만큼 늦었다.
마침내 순서가 와 안내한 곳으로 가니 주차하기가 까다로운 자리였다. 직원분의 손짓에 맞춰 전진과 후진을 여러 번 반복하며 어렵게 주차를 마쳤다. 급하게 뛰어가 교실로 들어갔을 때(그 후 탈의실과 교실을 찾는 데에도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었으나 그것까지는 차마 말하지 않겠다) 이미 50분 수업에 20분을 늦었다. 약간 어두운 교실에 팔다리를 뻗고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움직이며 열심히 요가를 하는 수강생들이 보였다. 나는 미안해하며 유리문을 슬그머니 열고 교실로 들어갔다. 요가매트를 깔고 동작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쉽지 않았다. 금세 남은 30분이 지나갔다. 내 몸의 뻣뻣함을 절실히 실감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아쉬운 마음으로 넉넉히 시간을 두지 못했던 나 자신을 탓하며 다시 주차장으로 가는데 낯익은 사람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방금 전까지 수업을 하셨던 요가 선생님이었다.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높게 묶고 그 묶은 머리를 아래로 내려 땋은 머리채가 좌우로 경쾌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맨 뒷자리에 있던 나를 알아보실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반가운 마음에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아, 네, 안녕히 가세요.” 다행히 그녀는 내 얼굴을 기억하고 답해주었다.
철제로 지어진 주차장 건물은 겨울의 추위 속에서 더욱 황량하게 느껴졌다. 차가운 바람을 헤치고 내 차 앞에 가 보니, 꽤 큰 승용차가 수평 주차되어 있었다. 오늘은 주차가 까다로운 날이네,라고 생각하며 차를 일단 밀어보았다. 그런데 도저히 밀리지가 않았다. 주차안내원 분도 안 계셨다. 날은 너무 추웠다. 어쩌지, 하고 망연히 서 있는데 어디서 나를 향해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도와드릴까요?”
선생님이었다.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나를 차를 몰고 나가다 보게 된 모양이었다. 그녀는 차에서 내리더니 그 경쾌한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혼자서는 어려워요.”
우리는 나란히 서서 차를 함께 밀었다. 손바닥 네 개가 차가운 자동차 표면에 얹혔다.
나 혼자 밀 때에는 꼼짝도 하지 않던 육중한 그 차가 두 사람이 함께 하니 쉽게 밀리기 시작했다. 한번 밀리기 시작하자 가속이 붙어 더 가벼워졌다. 우리는 적당한 곳까지 차를 밀었다.
“차를 뺀 다음에 다시 이 차를 밀어 놔야 다른 차들이 쉽게 나갈 수 있을 거예요.”
선생님의 말에 따라 나는 내 차를 일단 앞으로 빨리 빼놓기 위해 다시 차 안으로 들어갔다. 찬바람에 손끝이 시린지 소매 속으로 두 손을 감춘 채 지켜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백미러에 비췄다.
“이만하면 됐겠네요.”
그녀는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이며 눈으로 웃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내 말에 그녀는 다시 밝게 인사하며 그 경쾌한 걸음으로 자신의 차로 돌아갔다.
“다음 시간에 봐요!”
‘많이 추웠을 텐데…….’
차를 몰고 나오며 고맙고 미안하면서도 나는 첫 번째 요가 수업에서 꽤 소중한 것을 배웠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수업을 마칠 때 두 손을 모으고 그녀가 말했던 ‘나마스테'가 왜인지 좀 어색하던 중이었다. 높은 목소리로 노래하듯 인사하는 그녀에게 학생들이 다 같이 답할 때에도 차마 소리 내지 못하고 입모양으로만 서툴게 답했을 뿐이었다.
... 나마스테.
차 안에서 나는 조금은 쑥스럽게 느껴졌던 그 인사말을 소리 내어 말해 보았다. 그날 놓친 수업시간이 더 이상 아쉽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마스테'는 두 손을 합장하고 고개를 숙여 정중히 건네는 인사로 '당신 안에 있는 세계(신)에게 경배를 보냅니다' '당신을 있는 그대로 존중합니다' 의 의미라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