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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가비 Dec 15. 2024

[100-98] 슬기로운 시골 주택살이

 5촌 2도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주말마다 왕복 운전이 쉽지 않았는데 얼마전 평택ㅡ부여간 고속도로가 새로 개통되어 시간이 편도 30분 줄었다. 1시간 10분만에 수원집에 갈 수 있어 훨씬 좋아졌다.


 시골 생활한지  두 달쯤 되니 적응이 되었는지 수원에 가면 정신이 없어진다. 막히는 차와 빽빽한 아파트, 여기저기 공사하느라 자연과 땅이 파헤쳐지고 있는 모습들이 눈에 거슬린다. 인간이란 얼마나 변화된 환경에 빨리 적응해내는 동물인지 나를 보면서 깨닫고 있다.


  주택은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 마당이 있고 하늘이 보이고 눈 앞에 산과 들이 보이는 풍경을 보된다. 처음엔 저녁만 되면 깜깜해지는게 무섭고 대문 잠궜나, 현관문 이중으로 잠궈졌나, 담넘고 누가 오는거 아닌가 온갖 불안한 생각에 잠을 깊게 못잤다. 그런데 이젠 너무 평온한 시골이라는걸 알기에 안전하구나, 안심한다.


 햇살 좋은 날은 데크나 마당에 매트깔고 혼자만의 야외 요가도 할 수 있다.(집을 싹 고쳐 근사하게 바꾸고 싶구나)

 전원 생활은 사람을 너그럽게 만든다. 단지

추운 겨울을 나기 힘든 점이 좀 있어서 그렇지. 예를 들자면, 지하주차장이 없으니 대문 앞에 세워둔 차가 밤사이 온도차로 살얼음이 끼어 있는 때가 많아서 밤에 앞유리에 보온용으로 뭘 씌워놓아야 한다. 대문이 얼어있어 아침에 아주 세게 쳐야만 열린다던가 마당 수도가 얼까봐 열선으로 감아두는 대비를 해야 한다.

 

  그에 비하면 겨울에 아파트는 천국이다. 실내 공기가 따듯하고 외풍이 없으며, 뜨거운 물을 마음껏 쓸 수 있다. 차는 지하에  주차하면 되고 날씨에 개의치 않아도 된다. 그리고 옆집이나 이웃에 대해 서로의 비밀과 익명성이 보장되고 편리한 점이 많다. 그러나 자연과 너무 동떨어졌고 사각의 평면적인 공간이 좀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우리집은 오래된 아파트라 수납 공간이 별로 없는데 짐이 많아서 다. 버리고 치우고 깔끔하고 여유있는 공간으로 좀 만들어야하는데 이놈이 책이 많아도 너무 많고 그로 인해 책장들때문에 공간을 많이 잡아먹어서 정리가 잘 안된다. 집의 구조도 좀 비효율적이라 여러가지로 문제가 있다. 버리고 넓은 새 아파트로 가서 우아하고 럭셔리하게 살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인생이 하고 싶은 걸 다 하며 돈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기회를 아직 내게는 주지 않았다. (언젠간 그리 될 것이야. 부자마인드 장착)


 아무튼 아파트 살이와 달리 주택은 외풍이 아주 심하다. 그래서 겨울을 지내기가 힘들다. 가장 심각한 건 아직 도시 가스가 들어오지 않아서 기름보일러를 놓고 쓰는 상태라는 것. 기름값이 어마무시하여 난방비 걱정으로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에 신경이 쓰이는 일, 씻을 때 목욕 모드로 놓고 최대한 빨리 씻고 나오기 등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씻으러 한 번 들어가면 물을 엄청스럽게 써대는 청소년에게 계속해서 잔소리를 하게 된다.


  내가 살고 있든 시골집은 윗채와 아랫채로 이루어져 있는데 윗채는 전형적인 주택으로 방이 4칸, 거실과 주방, 화장실이 2칸, 다용도실도 넓어서 이것저것 막 놓을 수 있다. 정리 잘 못하는 나는 우리 아파트집에 이런 공간이 널찍하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넓은 평수에 살고파.(지금 35평)


 가을까지는 윗집에서 생활했는데 창도 많고 공간도 넒다 보니 둘이서 지내면서 그 넓은 곳에 보일러를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어 아랫채로 내려와서 겨울을 나기로 했다. 아랫채는 슬레이트로 지은 거실겸 주방, 방 하나, 화장실 하나, 창고로 이루어진 형태인데 윗채에 비해 훨씬 작아서 난방이 잘 된다. 그래도 아파트에서 살아왔딸과 나는 추위를 많이 타다보니 남편이 창문에 뽁뽁이를 이중으로 붙여주고 난방 텐트도 설치해주었다.

 전기 매트는 당연히 사용중이지만 밤에 자다보면 공기가 차가워서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코와 목이 칼칼하고 붓는 느낌이었는데 난방텐트속에서 자고나면서부터는 그런게 없어졌다. 훨씬 아늑하고 따듯하고 좋다. 이 안에 쏙 들어와서 뜨듯한 데다 배깔고 엎드려 책을 읽으면 세상 행복하다. 어린 시절 놀았던 아지트에 있는 것 같고 동심을 되찾은 기분이 든다.


 대부분 딸이랑 둘만 지내다보니 음식쓰레기도 별로 나오지 않지만, 생겨나는 음식물 쓰레기도 텃밭에 파묻으면 되는 수준이다. 음쓰버리려고 따로 분리할 필요없이 텃밭 흙속에 삽으로 묻으면서 이게 거름이 될거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이상하다. 흙으로 돌아가는 순환과 인생에 대한 묘한 감정이 떠오르기도 한다.


 집앞 텃밭은 양쪽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훨씬 넓은 쪽에는 고구마, 콩, 방울토마토, 가지 등 그때그때 철에 따라 바꾸어 기른다. 왼쪽 텃밭에는 아로니아와 블루베리를 키우다가 이제는 블루베리 나무만 남겨두었다. (위에 블루베리 나무 사진 있음. 아무리 몸에 좋은 성분이라해도 아로니아는 새도 안먹을 정도로 맛이 떫고 잘 안먹어진다.)


텃밭에서 키운 각종 채소나 열매를 수확할 때면 매번 경이롭다. 자연에 그저 감사해진다.


 주택은 마당이나 창고에 물건을 놓을 수 있으니 편하다. (우리 옆집은 너무 심하게 폐가처럼 해놓고 살아서 문제. 담장을 아주 노옾이 쌓아서 안보이게 하고 싶다)

 쓰레기도 마당 한 켠에 두었다가 일요일에 마을회관에 가서 분리해서 버리면 되고 자잘한 종이는 모닥불 피울 때 불이 잘 붙도록 태우면 유용하다.


 시골 주택살이의 이벤트같은 재미는 모닥불 피워 고기 구워먹기. 이번엔 돌판에 구워먹었는데 시간은 좀 걸렸지만 맛이 기가 막혔다. 밤과 고구마, 쫀디기까지 곁들어 불에 구워먹으면 입은 즐겁고 배가 부른만큼 행복감도 빵빵해진다. 지금은 겨울이라 그렇지 상추와 깻잎, 오기가 나는 계절에는 텃밭에서 야채까지 바로 따와서 먹으면  '나는 자연인이다' 수준. 큰 욕심없이 이렇게 살면 되지 싶고 고민거리도 날아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배부르게 먹고 뜨거운 차 한잔씩 들고 밤하늘 바라보면 쏟아질듯 가득한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 예쁘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전원 생활이 주는 선물은 마음의 크기가 넓어지고 커진다는 것이다. 단순한 하루하루의 삶, 그래서 욕심은 줄어들지만 너른 자연을 매일 보면서 자연의 순리대로 살고 싶어진다. 아등바등하며 집착하지 말고, 조바심내며 옹졸해지지 말자. 바람과 구름과 물처럼 유연하고 부드럽게 살자. 자유로운 생각과 넓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슬기로움을 지니자. 역시 나는 자연과 가까이 있을때 자주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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