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기 전, 노크하기
이걸 지금 쓰고 있는 나란 사람은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독서를 하기까지의 준비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다. 일단 책을 꺼내고 조금 조용한 재즈를 튼다. 재즈를 들으며 기분이 좀 가라앉으면 그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한다. 많은 장르가 있지만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음악은 따로 있는 듯싶다. 발라드를 들으면 그 노래 속에 빠져들고 말아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못하게 된다. 댄스를 들으면 들뜬 기분이 되어 밖으로 나가고 싶다. 그래서 댄스 장르를 들을 때면 청소를 하거나 나갈 준비를 하거나 할 때이다. 그래서 노래는 꼭 재즈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책을 펴고 조금씩 읽기 시작하면 밑줄치고 싶은 문장이 어김없이 나온다. 오늘 나는 이 문장을 읽기 위해 책을 읽었구나 깨닫게 하는 한 줄이 나오고야 마는 것이다. 주변을 살피지만 당연히 밑줄 칠 연필이나 볼펜은 없다. 그러면 결국 이 책을 읽는 분위기를 깨고 굳이 연필이나 볼펜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이렇게 두 번째 준비물은 당연히 ‘필기도구’가 된다. 그래서 난 밖을 나갈 때 항상 볼펜과 포스트잇이 세트로 되어있는 필기구를 꼭 챙긴다. 딱 콤팩트한 디자인으로 사은품 받은 게 있어서 요긴히 잘 쓰고 있는 중이다. 펜이나 연필만 따로 챙기는 것도 좋지만 이건 잘 보이지 않아 항상 잃어버리고 만다.
그렇게 재즈를 들으며 오늘의 문장을 힘차게 밑줄 치며 오늘을 마감하거나 시작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건 나의 취미가 당연히 맞을 것이다. 하지만 취미로 얘기가 잘 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독서가 혼자일 때, 의식처럼 할 때가 많은데, 책보다는 책을 읽을 때의 그 기운과 시간이 좋다. 책을 읽으며 듣는 ‘재즈’ 좋은 문장을 발견해 밑줄을 긋는 ‘행위’ 같은 것. 나에게 독서는 내가 좋아하는 순간을 얻기 위한 과정이다. 그것까지 포함해서 독서라고 한다면 나는 독서를 좋아하는 걸 넘어 그날 마셔야 하는 물의 양처럼 당연한 의식 같은 것이 된다.
‘재즈’ ‘필기도구’ 얼추 독서를 하며 필요한 준비물들이 갖춰졌다. 여기에 마실 수 있는 차나 커피가 있다면 더 빠져드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필수품은 아니다. 독서의 시간은 바쁜 아침이 될 수도, 카페인을 마시면 안 되는 밤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거의 곁들이는 수준으로 즐길 뿐이다. 준비물 하나가 더 있다면 그것은 작고 얇은 ‘플래그’이다. 밑줄을 치기에는 한 페이지가 다 너무 마음에 들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세로로 플래그를 붙여놓는다. 그러면 이 책을 다 읽은 후, 플래그를 붙여 놓은 곳만 찾아보면 마무리로 필사를 하거나 다시 기억하기가 참 좋다. 다시 찾으려고 하면 찾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꼭 추천하고 싶다.
하지만 독서라는 건 모두가 각기 다른 방식이 있을 것이다. 나보다 뛰어난 독서 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많겠지만, 나는 나만의 방식을 차츰 만들어 그것이 몸에 익는 과정이 좋다. 하다 보면 나에게 맞는 방식이 생긴다. 그것은 때때로 바뀌고, 그 방식이 지겨워 안 하게 되기도 한다. 독서 자체를 하지 않는 기간도 있다. 하지만 연어처럼 다시 돌아온다. 책을 펼쳐 그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게 된다.
책을 여는 건 문을 여는 것과 같다, 그것은 나에게 향하는 문이 될 때도, 사람과 통하게 되는 문이 될 때도 있다. 그럼 나는 항상 재즈와 연필과 플래그를 가방에 넣고 그 문 앞에서 무언가를 마주하기를 기다리게 된다.
2023.11.10
* 다시 읽어보니 ‘어김없이’라는 단어를 너무 많이 썼다. 나에게 독서란 어김없이라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