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동준비
행복한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다. 11월 말이 되면 수능도 있고,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아 조금은 들뜬 분위기가 된다. 날씨는 점점 매서워지고 곳곳에서 캐럴이 흐른다. 매서워진 날씨에 마음의 문이 점점 잠길 때쯤 흘러나오는 캐럴에 초록과 빨강의 따뜻함으로 다시 문이 열린다. ‘어서 따뜻한 집으로 들어가, 따뜻한 차 한 잔 마시고 싶다’ 가도 ‘사람들과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캐럴을 틀고 연말을 마무리하고 싶다’로 바뀐다. 두 가지 다 연말에 하기 좋은 액션이지만 11월 말에는 집 월동 준비가 먼저일 것이다.
최근 친구 가게에서 양털 담요와 겨울 잠옷을 샀다. 브라운 색의 스프라이트로 같은 모양을 맞췄다. 그들을 집에 데려오니 벌써 행복한 연말이 연상된다. 이런 소비는 기쁘다. 좋은 게 연상되는 소비는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 비록 그 기분 좋음이 몇 초만 간다 하더라도 말이다. 하루의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건 많지 않기에 이런 감정은 몇 초라도 소중하다.
지금도 유튜브로 캐럴을 틀어놓고 어제 산 양털 담요를 두르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저번 달부터 시작한 요가로 인해 몸과 정신이 맑아지고 기운이 생기는 것 같다. 다시 시작하길 너무 잘한 것 같다. 예전에 1년 정도 요가를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병치레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요가를 그만두고 몇 달 후, 자궁에 이상이 생긴 걸 보더라도 일주일에 몇 번 하는 요가가 나에게 약이었던 건 분명하다.
올해, 평일에 4시간 밖에 일을 하지 않다가 저번 주부터 주말에 다른 곳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평일에 4시간만 일을 한다는 건 누군가가 일을 하는 시간에 무언가를 하지 않고 있는다는 것. 이게 처음 몇 달은 좋았다가 점점 안 좋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나의 자아가 쪼그라드는 기분이었고 나의 지갑도 함께 저절로 같이 쪼그라들었다. 그러다 예전부터 일하고 싶었던 곳에서 사람을 구한다고 해 바로 이력서를 넣었는데 다행히 합격을 하게 되었다.
이번 연말은 이렇게 매일을 일을 하면서 지내겠구나 싶다가도 별로 싫지가 않았다. 이런 내가 이상했지만 내 쪼그라든 자아는 아무것도 안 하는 무의 상태보다는 뭐라도 하는 걸 택한 것 같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잘 걸어가는 중이다’라고 마법 같은 주문을 나에게 걸어본다. 두 곳 다 위치가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있어서 전혀 춥지 않은 환경인 것도 너무 좋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는 딱이다.
이번 겨울은 바삐 땀 흘리는 춥지 않은 계절이 될 것 같다. 이렇게 나의 36살이 지나가겠지.
2023.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