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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리 Dec 20. 2023

요동

일상의 빨간 불


노루와의 산책을 마치고, (노루는 강아지입니다) 밖에 나갔다 왔으니 발을 씻기고, (노루는 이걸 왜 해야 하지? 하는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해 앉았다. 12월이 지난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많은 일이 지나간 기분이다. 일단 주말에 잡았던 직장이 잘 맞지 않아 그만두게 되었고, 몸이 아팠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에 대한 정이 많지는 않았지만 큰 대들보가 사라진 기분에 자꾸만 눈물이 났다. 돌아가시니 잘해주셨던 기억만 난다.


지금의 난 마치 소용돌이 속 중심에 서 있는 기분이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주변이 자꾸만 요동치고 변화한다. 나는 정말 변한 게 하나도 없는 기분이다. 그렇다면 가만히 있는 내가 잘못된 걸까, 요동치는 주변의 환경이 잘못된 걸까. 이런 답 없는 물음표를 나에게 자꾸 던진다. 정말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글이 써지지 않는구나 느낀다.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의 인내심과 무던함이 존경스러워지는 순간이다.



‘일간 이슬아’를 발행한 이슬아작가를 좋아했다. 좋아하게 된 이유는 매일 쓴 글을 발행하는 그녀가 너무 멋지고 저절로 응원하게 되는 마음이 가장 컸던 거 같다. 그녀의 글들은 다 솔직하고 거침없었으며 아름다웠다. 매일을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써 내려가는 사람이라니. 그냥 같은 시절에 만날 수 있어서 너무 고맙고 영광스러운 마음이었다. 그건 내가 현재 그렇게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앞으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도 언젠가는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갑자기 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속에 많은 과정이 있을 거고, 지금 이 순간도 그 과정 중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 마음은 자꾸 요동친다. 그리고 그때는 절대 글이 써지지 않는다. 내 마음을 잠재우고 어느 정도의 긍정을 가져야만 자판을 두드릴 용기가 생긴다. 글을 쓰는 나는 수많은 나 중 어느 정도 나에게 만족하는 나이고, 넓은 마음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나일 때에만 나타난다. 그걸 모두 종합시켜 하나의 내가 되면, 과연 나는 매일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작년에 점을 봤었는데, 어린 도령을 모시는 무속인이 현재 나의 상태를 얘기해 준 적이 있다. 운전을 하는데 신호는 계속 빨간 불이고 나는 그걸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가까스로 파란 불이 되어서 그 자리를 떠나도 바로 앞에 다시 빨간 불이 있다. 그게 나의 현재 상태라고 말해주었다. 그때는 정말 그런 상태였을 것이다. 나는 격한 공감 또는 동의의 고개 짓을 연신 했다. 하지만 그건 과거의 내가 느끼던 동감이고, 지금의 나는 그 상황은 누구에게나 오는 상황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불행도, 행운도 특별하게 가진 사람은 없다. 그걸 불행으로 느낄지 행운으로 느낄지에서 그 사람의 특별함은 완성되는 것 같다.


어느덧 빨간 불을 넘어서서, 소용돌이 속까지 도달하게 된 것일까? 나는 움직이고 싶다 아니 움직이고 싶지 않다. 나는 자유롭고 싶다 아니, 나는 어딘가에 종속되고 싶다.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까지가 내가 아닐 수 있을까. 주변은 이런 생각을 하지 말고 순간에 집중하고 사는 것에 몰두하라고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준다. 너무 맞는 말이라 고개를 다시 끄덕거리지만 집에 돌아온 나는 다시 노트북을 켜고 나의 내면을 열어 글로 적어 보낸다. 누구에게 보내는 지도 모를 글들이 펼쳐진다.


이것은 모래알 같은 작은 나의 여정의 기록이자, 무엇이든 남기고 싶은 나의 발악이다. 아무도 공감해주지 않는 순간 속의 생각에서 나온 글이고, 유일하게 내보일 수 있는 게 이런 식의 글뿐이라 적는다. 아니 속삭인다.


나는 아직 소용돌이 속이다.


2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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