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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리 Oct 27. 2023

동물극장



나의 핸드폰 사진첩의 90프로는 우리 집 강아지 ‘노루’로 채워져 있다. 그만큼 내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녀석인데, 웃기게도 이 녀석은 나를 일 순위로 생각하지 않는다. 다 저마다의 기준이 있는 것처럼 같이 산지 6년째가 된 지금, 노루의 행동 패턴은 꽤 단순하고 반복되어 있다. 그 패턴 안에는 내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 사람이 꼭 필요하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사람이 꼭 필요하다는 건 어쩌면 인간의 오만에서 비롯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주인 없이 밖을 떠돌던 개들이 합심하여 함께 다니는 것만 보더라도 그들만의 어떤 생존 전략이 있는 게 확실하다. (모든 강아지가 그런 것은 아니고 이건 우리 집 강아지를 보고 내가 느꼈던 것이다. 워낙 웬만한 사람보다 독립적인 강아지라서. 의존적인 사람이 있는 것처럼 독립적인 강아지도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강아지 프로그램도 많아지고 강아지 유튜브는 더 많다. 그들이 귀엽게 뛰놀고 장난치고 장난에 당하는 영상을 보면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진다. 가끔 그들의 행복한 표정에서 나는 혼자 슬퍼한다. 뭔가 그들에게는 사람 마음을 애잔하게 하는 기운이 흐른다. 걷는 모습, 누워 있는 뒷모습 (마치 빵 같다), 헤 벌리고 웃고 있는 얼굴에 보이는 혀. 그것들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려고 존재하는 것처럼 그들보다 보고 있는 우리가 더 행복해진다.


 조금 흐린 일요일 오후, 여유로운 재즈를 들으며, 옆에서는 노루가 누워 자고 있고 (잘못 보면 그냥 빵),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모든 게 완벽히 갖춰진 시간이 흐르고 있다. 살짝 피곤하지만 기분 좋은 피곤함이고, 늦여름이라 조금 덥지만 아직 들리는 매미 소리가 반갑다. 난 완벽히 어리지도 않고 늙지도 않은 딱 좋은 나이인 것 같고, 곧 가을이 올 것처럼 하늘은 높다. 이럴 때면 내 마음의 파동이 울리는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 것 일 테다.


 강아지 영상들을 보다 보면 모든 게 다 ‘다큐’라는 한 장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아무리 이해하고 싶고 가까이서 보고 있어도 난 그들을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난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해하고 싶어질 때 디스커버리채널이나 동물에 대한 영상을 본다. 그곳에는 그들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마치 다큐프로그램 중 <인간극장>을 보는 것 같다. <인간극장>도 인간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으니까. 동물을 놀리건, 동물이 말썽을 부리던, 귀엽든 간에 마치 인간극장처럼 처음의 그 BGM이 들린다. 난 그들을 가엽게 보고 싶지 않지만 항상 끝은 아리고 슬프다.


 동물을 볼 때 느낌표가 아닌, 물음표로 항상 다가가고 싶다. 지금 어때? 행복하니? 항상 물어보고 인간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을 해주고 싶다. 난 영원히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렇게 해주고 싶은 마음까지 어쩌지는 못한다. 난 평생 이렇게 살겠지. 아니, 평생 이렇게 살고 싶다. 영원히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영원히 기억하고 물어보며 말이다.


2023.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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