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대장암 수술 잘하는 병원, 뇌수술 잘하는 병원 등을 검색했다. 그중 거리가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에 가기로 마음먹고 잠자리에 누웠다. 낫지 않는 어지럼증, 갑작스러운 몸 상태 악화와 응급실 경험.. 그중 가장 불안하게 하는 건 내 몸이 아픈 이유를 모른다는 거였다. 아버지가 대장암을 겪었기 때문에 더 걱정이 됐다. 대장암은 가족력이 높은 질병이라는데 정말 암이면 어쩌지. 당장 죽을병이면? 상상뿐인데도 죽음이 실감 나게 다가왔다. 그런데 신기한 건 생각보다 삶에 그다지 미련이 남지 않았다. 꼭 해야 할 일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여행도 웬만큼 해봤고, 친구들이랑 자주 만나기도 했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글도 썼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참지 않고 해보길 잘했다. 모든 걸 미래로 미뤄두고 인생을 즐기지 못한 채 죽게 된다면 참 억울했을 텐데. 얼마 없는 재산을 누구에게 줄지도 생각하고, 각종 인터넷에 남은 내 흔적도 다 지워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음날 지하철을 타고 병원을 향하는데 걸을 때마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하고자 하는 검사는 대장내시경과 MRI였다. 잊지 않도록 마음속으로 되뇌며 드넓은 대학병원 앞에 도착했다. 너무나 커다란 규모에 정문이 어딘지 찾기 어려웠다. 겨우 문을 찾아서 들어간 나는 안내 데스크에 물었다.
“대장암 검사랑 MRI를 찍고 싶은데요.”
“예약하셨나요? 진단서는 가져오셨어요?”
“아뇨. 그냥 접수하려고요.”
“해드릴 수는 있는데 진단서가 없으면 보험 적용이 안 됩니다. 대기시간도 길거예요.”
그제야 알았다. 대학병원은 1,2차 병원에서 큰 병원 가보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 와야 하는 곳이라는 걸. 뒤돌아 나와서 택시를 타고 이전에 혈액검사를 했던 비교적 작은 종합병원에 가달라고 부탁했다. 기사님은 내 말을 듣더니 기사님이 “허허, 대학병원에서 그냥 받아주면 다 거기 가서 줄 서 있죠.”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병원에 도착해서 곧바로 신경과랑 내과를 같이 예약했다. 대장내시경을 하고 싶다고 하니 여성 선생님으로 예약해주었다. 먼저 MRI를 찍자고 했는데 오전 10시인데 2시에 예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일단 MRI예약을 하고 내과 진료를 봤다. 내 증상(몇 달간 설사, 잔변감, 대장암 가족력)등을 듣고는 의사는 일단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내가 대장내시경 약을 먹고 거의 실신할 뻔한 적이 있다고 하니까 이번에는 알약을 먹어보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때까지 어지러움 약, 오심을 막아주는 약 등을 먹고 있었기에 내시경 전날에 먹어도 되는지 물었다. 의사는 괜찮다고 했다.
회사에 들러서 급한 일들을 처리하고 2시에 다시 병원에 도착했다. 금속 물질을 모두 제거하고 병원에서 주는 가운을 입었다. 마스크에도 철심이 들어있어서 천으로만 된 마스크를 받았다. 이미 몸에 금속이란 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몸속에 있던 금속을 잊고 있다가 죽었다거나 하는 사건들이 떠오르면서 괜히 무서워졌다. 그것도 그럴게 MRI 검사는 움직이면 안 되기 때문에 내 머리는 무언가로 고정되어있고 기계에서는 철컹철컹하면서 굉음을 뿜어대기 때문에 저절로 공포심이 몰려온다. 게다가 그 상태로 30분을 꼼짝 않고 있어야 한다.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로 간지럽고 재채기가 나올 것 같은 것도 필사적으로 참고 30분을 버텼다. MRI 기계에서 나오는데 손발이 다 저렸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결과를 30분 후면 알 수 있다고 해서 진료실 앞에서 기다렸다. 진료실로 들어가자 의사는 나의 뇌 사진을 보여주었다. 혈관도 깨끗하고 뇌도 깨끗하다고 했다. 다만 축농증이 있을 뿐이라며 뇌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제일 걱정했던 뇌가 말끔하다고 해서 한시름 놓았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병원을 나섰다. 걱정이 줄어서 인지 점심때부터 약을 먹지 않아도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모든 게 기분 탓인가? 하지만 이제 대장내시경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