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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살 Jan 03. 2021

단유, 드디어 해낸 첫 이별

15개월만에 이룬 '젖과의 이별'을  자축하며

처음부터 끝이 정해진 만남이었다. 

아마도 너는 모르고 있었겠지만. 아마도 너를 제외한 모두는 이 만남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질수록 세상은 너와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볼 테니까. 물론 남들의 시선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점차 줄어든다는 사실, 그 사실이 나를 너에게서 떠나도록 만든 것이다.


그래도 이번 이별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는 것은 알아주었으면 한다. 너의 집착 때문이었을까. 나의 우유부단함 때문이었을까.  울고 불고 소리까지 치며 매달리는 너에게 여러 차례 우리가 이별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줬지만 너는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긴, 갑작스러운 이별을 누가 그리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너는 상상도 해보지 않았겠지. 지난 시간 동안 너에게는 이 시간들이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을 테니까. 만족도, 희열도, 생기도, 나와의 입맞춤을 통해 알게 되었을 테니. 


이별의 순간은 미뤄지고, 또 미뤄지고, 또 미뤄졌다. 그러나 이내 끝은 오고야 말았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다고, 더 미룬다면 나 역시 더 힘들어질 것이 분명할 거라고. 누군가는 혹독한 이별의 대가를 치러야 할 거라고 경고해 왔기 때문이다.  미리미리 준비해 두지 않으면 겪어야 할 고통이 너무 클 것이라고.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는 아니라며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전문가와의 상담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다. 마음을 굳게 먹고 나니 뒤이은 일들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냉정하게, 차갑게, 나를 원하는 너의 눈빛을 매몰차게 돌아서기를 몇 차례. 드디어 완전한 이별에 성공했다. 아마도 어느 순간부터는 너도 이별을 예상했던 것일지도. 



세상의 모든 이별들은 비슷하니까.

꽤 자연스러운 수순을 밟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이별이 거쳐 온 과정도. 세상의 모든 이별이 그러하듯. 


만남의 횟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처음에는 단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던 너도 몇 시간 동안 소식이 없어도 궁금해하지 않게 되었으니까. 조금은 서운하기도 했다. 네가 나 말고도 다른 것에 흥미를 보이고, 또 더 만족스러워할 때는 말이다.  그렇게 너는 나와의 만남을 잊어가겠구나. 야속하기도 했다. 


시간은 너에게서 이별의 아픔을 흐릿하게 할 것이다. 아마도 시간이 흐를수록 아쉬워지는 것은 나이겠지. 우리가 만났던 벅찬 순간들은 내 기억 속에만 남을 테니까. 세상에서 이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는 듯 움켜쥐고, 바라보고, 갈구하던 너의 손과 입은 세상이 만들어 놓은 달콤함과 강렬함 앞에서 나를 잊어갈 것이다. 그리고는 '내가 언제 그렇게 매달렸냐는 둥 기억에 없다는 둥 거짓말 아니냐는 둥' 발뺌을 하겠지. 나는 덩그러니 놓여 이 시간들을 돌아보며 그리워하고 추억할 것이다. 이렇게 기록까지 남겨두는 걸 보면. 찌질하게 지난 추억에 매달리는 것은 내 쪽이 될 것이다. 


하지만 또 모든 이별이 슬픔만을 남기지는 않듯, 너의 첫 이별, 이 상실도 너를 더 성장시킬 것이다. 나 없이도 이 세상에는 너에게 힘을 주고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것들이 즐비해 있으니까. 너 스스로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더 넓은 세상을 접하고, 더 오래 도전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했던 시간이었다. 

슬프게도 너와의 만남을 위해 나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나를 나이게 하는 것들을 잃어가는 것.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너는 모르겠지. 알아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소연쯤은 하고 싶었다. 너에게 나를 보내면서 나는 점차 시들어갔다. 너는 웃고, 원하는 것을 얻으며 반짝거렸지만. 나는 반짝일 수 없었고, 원하는 것을 먹지 못할 때마저 있었으며, 가끔을 울음을 삼키기도 했다. 어떨 때는 상처 입기도 했고, 이를 앙다물어야 할 만큼 고통스럽기도 했다. 


한동안은 이 이별의 대가로 가슴이 덴 듯, 화끈거리고 통증까지 찾아오는 시간을 견뎌야 할 것이다. 더 슬픈 사실은, 아마도 나는 다시 예전의 나로는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마치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이, 꽉 채워 놓았던 생기를 다 가져가 버린 내 가슴만 남아 있을 테니. 그래도 지난 시간 동안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후회는 없노라고. 온몸과 마음, 정성을 다해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었으니까. 


마지막 만남의 순간은 기념이라도 해 놓아야 했을까. 

누군가는 자신의 휴대폰에 만남의 소중했던 순간을 저장해 놓은 동영상이 있다고도 했다. 행여 누가 볼세라 비밀번호를 걸어 두었지만 몇 년이 흐른 지금도 가끔씩은 꺼내어 본다고도 했다. 하긴, 너와 내가 뒤엉켜 있던 그 순간 네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내 품 안에서 잠들어 있는 너의 모습. 들썩이는 숨소리가 나를 얼마나 편안하게 하는지. 나 역시 기록해 둘까 고민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어떤 만남은 단 둘만의 기억으로만 남겨 놓아야 신비롭기도 한 것 아니겠니. 어쩌면 네가 언젠가 그 기록을 보기라도 한다면 어린 날 자신의 실수였다며 부끄러워할지도 모르는 일이니 내 기억 속에만 남겨두려 한다. 


우리 만남을 통해 네가 행복했다면, 그걸로 되었다.


그럼 정말. 안녕. 


.

.

.



15개월, 길었던 수유를 드디어 마쳤습니다. 

끝내 주지 않는 젖을 만지작 거리다가 1시간 만에 깊이 아이가 잠들기까지,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던 헛소리를 이렇게 남겨 놓습니다.

 

찌찌줘~라고 귀엽게 말하며 품으로 파고들던 아이가, 벌써 그립습니다.


이 이별에 세상 떠나갈 듯 슬퍼했던 것이 자기뿐일 거라고, 아이는 나를 원망했겠지만.

실은 이 이별을 오래도록 뒤돌아보고 추억할 것은 아마도 나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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