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그까짓 밥. 그래도 밥.
사방으로 흐트려져 있는 밥알들 위로 한숨이 얹힌다. 입에 넣어 삼키기 좋게 끓이고 뭉개어 으깬 밥알들이다.
체릿빛 마룻바닥. 가뜩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예전 주인 취향이었을 장판 위해 산산히 흩뿌려진 밥알을 치우려다 쇼파에 털썩 주저 앉았다. 한 숟갈이라도 더 입에 넣어주려는 나와, 입에 넣은 밥알을 꺼내 손으로 만져보려는 너의 싸움. 이것이 싸움이라면 승자는 어짜피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칭얼거림에 정신이 번쩍 든다. 옆에 앉아서 함께 식사를 해야 아이가 식사하는 시간임을 깨닫고 익숙해 진다기에, 꺼내 놓은 내 밥은 식어간다. 국도 식었다. 어제 저녁 한 솥단지 끓여 놓았던 미역국을 전자렌지에 넣고 돌려 온기만 살짝 불어 넣어 두었는데 그나마 그 온기마저도 사라지고 있다.
엉망이 된 손을 씻기고, 얼굴을 씻기고, 그러다가 젖어버린 옷을 벗기고, 행여나 추울세라 벗긴 옷을 대신할 옷을 꺼내입힌다. 무언가 부족했는지 울어대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자 그제야 잠이 든다. 그래, 오늘의 사투는 졸린 너의 마음을 모른 내 탓이로구나. 잠이 든 아이를 슬며시 두고 나와 어지러진 식탁에 앉는다.내 입에도 무언가 넣어줘야 할 시간. 식어버린 밥과 국을 그대로 밀어넣는다. 치우고, 데우고, 사람답게 먹으려다가는 어느새 일어나 나를 불러 오는 너를 맞이해야 할 지도 모르니까. 나의 식사는 속도가 생명이다.
밥알들을 내 입으로도 쑤셔 넣고 나자 이제는 바닥을 치울 차례다. 식탁 위에 언젠가부터 늘 자리하고 있는 물티슈를 꺼내들었다. 잘못 문지른 밥알은 형태도 알 수 없이 으깨어져 바닥에 들러 붙어 있었다. 뱃속으로 들어갔다면 힘이라도 나게 도왔을 알갱이들은 바닥에 뭉개지고 즈려져서는 물티슈에도 따라 붙지 못하고 시꺼멓게 남았다.
하루 세끼 중 한끼일 뿐인데 잘 먹어주면 그리 기뻐하고 이처럼 엉망을 만들어 놓으면 왜 이리 짜증이 나는지.
고작 밥 때문에 오락가락 기분을 맞아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더 견디지 못하게 한다. 주린 배가 차야만 잠이 들고, 배가 불러야만 방긋 웃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식욕에 매달려 생존하고 있는 아이를 키우느라 인간의 가장 고차원적인 욕구 '자아실편'을 하고 싶다는 나의 희망은 바닥을 치고 있다.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했다. 하루종일 꼼지락거리며 무언가를 한 것 같긴 했는데, 밤이 되어 잠들 무렵이면
어젯밤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에 진이 빠졌다. 의미없이 돌을 밀어 올렸다가 해가 뜨면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진 돌을 만나야만 하는 시지우프가 따로 없었다. 밥은 목구멍으로 사라졌고, 잔해는 씻어서 내 손으로 깨끗하게 했으나 다시 채워야 했다.
모든 먹는 행위가 끝나고, 밥상 아래를 치우고 또 설거지를 하고.
그렇게 다 치웠는데도 어느새 갑자기 어느 틈엔가 튀어나오는 밥풀 한 알처럼
내 노고의 대가는 형편없는 모습으로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않은 시간에, 튀어나와 나를 당황하게 만들곤 했다.
먹이고, 치우고, 재웠다. 그러나 어느 행위의 목적어도 나인 것이 없었다. '먹다'라는 간단한 행위 하나만 해도 먹기 위한 음식을 준비하고, 먹을 수 있도록 식탁위에 차리고, 또 그 이후에 '치우는' 행위를 동반했다. 그저 숟가락을 들어 밥을 떠서 입에 넣는 행위만을 '먹다'라고 정의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오직 먹이기 위해 이어지는 삶 같았다.
아이들이 잘 먹는 음식 레시피를 찾았고, 신선한 재료를 장바구니에 넣고 할인쿠폰을 찾아 최적의 결제조건을 찾아 결제까지 마치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문 밖에 놓고 간 재료를 냉장고와 냉동실에 차곡차곡 넣었고, 때가 되면 넣어놓은 것들을 꺼냈다. 간장을 몇 스푼 넣어야 하는지, 설탕은 또 얼마나 넣어야 하는 지. 요리마다 인터넷을 뒤지지 않고 그냥 대충 휘~ 둘러 넣을 수 있게 되었던 것. 매일 반복된 요리로 내가 내세우며 자랑할만한 성취는 고작 그 정도였다.
웹툰 <미생>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바둑, 그까짓 바둑. 그래도 바둑
고작 12글자를 오래도록 되내여본다. '바둑'이라는 단어 자리에 '밥'을 넣어보자니 어쭈구리, 여차하면 눈물까지 나올 셈이다.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일. 몰라도 상관 없고, 관심을 내어줄 겨를조차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어쩌랴. 나에게는 전부인 것을.
그래서 내일은 또 어떤 밥풀을 맞이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