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유.
'엄마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끔찍했던 고통이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 고통 끝에 몸 밖으로 내보낸 생명은 울음으로 존재를 알려 왔다. 그제야 쩍 벌리고 있던 가랑이로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피 흘리는 나의 아랫도리 위로 환하디 환한 조명이 내리 꽂히고 있었다. 가까스로 아랫도리를 추스를 즈음 낯선 손길은 내 윗도리를 풀어헤쳤다. 저항 없이 한 봉긋한 가슴까지 환한 빛 아래 드러났다. 젖가슴 위로 아이가 얹혔다. 소중하게 감춰왔던 '아래'와 '위'를 차례로 세상에 드러내는 굴욕의 순간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간호사는 내 젖꼭지를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으로 뽑아 올렸다. 충격이 밀려왔다. 지금껏 살면서 이 내 가슴은 얼마나 소중하게 지켜왔던가. 여성의 가슴은 드러내서는 안 되는 것, 결코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젖꼭지를 문 아이의 입이 움직였다.
아이가! 세상에 나온 지 1분 남짓 된 그 조그만 존재가! 내 젖꼭지를 물고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그 누구도 강제로 돕지 않았다. 그 누가 시킬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분명 아이는 스스로 젖을 찾고 있었다. 나의 고통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한 고통과 충격을 겪으며 세상에 나왔을 아이는... 나의 가슴에 입 맞추며 이 세상과 처음 만나고 있었다.
내 부푼 배에서 아이가 나왔다는 사실의 신기함보다 눈도 채 뜨지 못하는 그 존재가 스스로 젖을 찾는 순간의 충격이 컸다. 그제야, 눈물이 났다. 나는 내 삶이 존재하는 한, 이 아이를 먹여줘야겠구나. 살아야겠다는 본능, 먹어야 한다는 욕구를 가진 이 존재가 내 속에서 나왔구나. 아, 나는 이 존재를 사랑하고야 말겠구나. 그런 생각이 든 것도 그때였다. 세상에 또 한 명의 엄마가 더해진 것은 그 순간이었을게다.
새벽 수유.
앞으로 닥칠 육아의 험난함을 예감하다.
자연분만이었지만 몸은 만신창이였다. 몸을 일으키면 어지러워 세상이 핑 돌았다. 화장실에 갈 때도 부축을 받아야 했다. 꿰매 놓은 아랫도리는 여전히 따끔거렸으며 울컥 피를 쏟아냈다. 하지만 수유는 멈출 수 없었다. 초반에는 젖이 잘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물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만 젖이 돌기 때문이다. 아이가 젖을 물어야 젖이 나오고, 젖이 나와야 아이가 젖을 먹는 이상한 순환이 지배하는 세계였다.
새벽에는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벨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졌다. 이른바 '수유 콜'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와 같은 갓 출산한 산모들은 저마다 좀비 같은 모습으로 신생아실로 향했다. 분홍과 주황 네모들이 모자이크처럼 얽힌 똑같은 옷을 입고 한 손으로 링거를 밀며, 그곳으로 모여드는 이름 모를 이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젖을 주기 위해 몰려드는 발걸음이 마치 고된 육아의 길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웅장한 걸음 같아 보였다면... 과장된 것일까?
양쪽 젖을 번갈아가며 아이에게 물리라며 신생아실 간호사가 일러준 시간은 40분이었다. 한쪽에 20분씩, 꼼짝없이 한 자세로 앉아 젖을 먹였다. 그러고 있다 보니 젖 먹이기의 신비로움도 줄어들어갔다. 대신 고통이 밀려들었다. 젖을 빠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고개와 어깨가 저렸다. 아이의 입에 젖을 밀어 넣기 위해 다리 한쪽은 발판에 얹어서 어정쩡한 자세가 되었다. 아이는 말 그대로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강렬하게 젖을 빨아대는 탓에 유두는 갈라지고 피딱지가 맺혔다. 그러다가도 아이는 젖을 물고 잠들어 버리기 일쑤였다. 귀와 발을 문지르고, 얼러가며 깨우는 과정까지 추가됐다. 그 후로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아이는 나의 젖을 먹고 있다.
매일 이어지는 수유.
내 삶은 변해가고 있다.
모든 것이 변했다. 젖 때문에. 우선 입는 옷이 달라졌다. 아래까지 내려오는 옷자락을 끌어올리고 젖을 꺼내기란 귀찮은 일이었으므로 수유복을 새로 장만해야 했다. 나의 과제는 최대한 수유복처럼 보이지 않는 수유하기 쉬운 옷들을 찾는 것이었다. 가로, 세로로 지퍼가 달려 쭉 열고 나면 젖만 툭 튀어나오게 디자인된 옷들은 해괴망측하기 짝이 없었다. 해결책은 단추로 된 옷이었다. 거기에 더해 아이의 얼굴이 문질러질 것이기에 면으로 된 부드러운 것이어야 했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한 손으로는 휴대폰을 들고 젖 먹이기 쉬운 옷들을 찾는 웃긴 시간들이 이어졌다.
먹는 음식도 신경 써야 했다. 젖은 내가 먹는 음식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설마 그렇겠어? 싶었지만 맵기로 유명한 떡볶이를 먹은 날, 아이의 똥꼬가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는 친구의 고백에, 고춧가루 든 음식은 가리게 되었다. 내가 흡수한 카페인이 젖을 통해 아이에게 전해질까 봐 임신했을 때도 하루에 한 잔씩 마셨던 커피도 끊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 때문에 아이가 잠들지 못하면 힘들어지는 것은 다름 아닌 내가 될까 봐서였다.
나를 위해 존재하던 것들은 모두 아이를 위한 것이 되었다. 미적인 측면에서 여성으로서 굴곡진 몸매를 완성시키기 위해 존재했던 가슴은 이제는 영양분이 충만한 젖통에 지나지 않았다. 그냥 '젖'이 들어 있는 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결혼 전에는 한 번 만져보겠다고 그리 애를 쓰던 남편도 이제는 환한 불빛 아래 훤히 드러난 가슴을 봐도 아무 감흥이 없는 듯했다. 비단 가슴뿐만의 일은 아니다. 나 자신으로, 나만을 위해 존재하던 나의 신체가 모두 아이를 위한 도구가 되면서 몸은 고통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손목이, 허리가, 어깨가 아이의 무게를 견뎌내는 과정에서 망가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아이를 세상에 내어 놓기 위해 잔뜩 벌어져 있던 몸의 내부와 그 과정에서 잔뜩 부풀어 버린 배, 엉덩이는 여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수유하는 시간.
나는 생각을 하기로 했다. 엄마로서의 삶에 대해
하루에 20분씩, 6~7번. 나는 젖을 물린다. 젖통에 아이를 매단 채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꼼짝없이 수유만 해야 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어떻게 유용하게 쓰면 좋을까. 하다가 다다른 것이 브런치였다. 온몸이 묶여 있지만 언젠가 꿈이라 말하던 '글'을 위해 생각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젖을 먹으며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날 동안, 나도 자라나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아이'만이 아니라 '글'을 낳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부푼 기대까지도 밀려왔다.
그렇게.
수유가 끝나고, 잠든 아이 곁에서 나는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