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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구 YANGGU Aug 05. 2019

나는 조종사의 아내다 - 문 앞에 놔주세요

혹은 경비실에 맡겨주세요

짧으면 하루, 길게는 2주 동안 집에 없다. 하지만 그전에 인터넷으로 주문해놓은 내 옷, 신발, 잡동사니 등과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음식들은 내가 한국에 없는 동안에도 꾸준히 우리 집에 온다.


일단은 우리 부부가 집에 있는 날이 많지 않기에 항상 주문을 할 때 배송 메시지란에 "부재 시 문 앞에 놔주세요"라고 적는다. 그런데 아파트 현관에도 비밀번호를 눌러야 하기 때문에 우리 아파트에 자주 오시는 택배 기사 분이 아니시면 어쩔 수 없이 경비실에 맡기신다. 하지만 이것도 어지간히 눈치 보이는 게 아니다. 평소에는 내가 퇴근을 하고 찾아가면 되지만 남편과 함께 비행을 가는 때에는 몇 날 며칠이고 경비아저씨와 함께 좁은 경비실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특히나 부피가 큰 물건 같은 경우에는 비행에서 오자마자 택배를 찾아가라는 인터폰이 울린다(새로 바뀐 경비아저씨께서는 내가 너무 늦게 찾아갈 때에 죄송하다는 인사를 드리면 "이 아파트에 80명(?)도 넘게 항공사 직원이 살아요! 이해해요!"라고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그래서 우리는 혹여나 분실의 위험이 있더라도 문 앞에 놔주시는 걸 선호하는데, 그것이 식품일 경우에는 문제가 된다. 특히나 여름에는 너무 습하고 더워 식품 종류는 웬만하면 마트에서 바로 구매하거나 웬만해선 밖에서 사 먹는 편이다.


자취를 하던 시절엔, 비행을 갔다 오면 허리 높이까지 쌓여있는 택배 상자들을 보면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하나하나 뜯어보는 재미에 비행의 피로도 가시곤 했다. 근데 남자들은 원래 택배를 잘 안 시키는 건지 우리 남편만 그러는 건지 남편의 택배는 1년에 오는 개수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나마도 내가 필요해서 남편을 꼬셔 사게 만든 것들이 대다수다. 내 택배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 내가 너무 민망할 정도다. 그래서 요즘엔 남편이 비행 가고 내가 집에 있을 때 택배가 배송 올 수 있게끔 하는데 그마저도 분리수거 안 한 채로 남겨져 있는 박스들 때문에 들켜버린다.


"부재 시 문 앞에 놔주세요"가 한국에서만 쓸 수 있는 배송 메시지라는데, 생각해보니 일본에 살았을 때에는 택배 배송 시 집에 없으면 우체국에 찾으러 가거나 방문시간을 재요청해야 했었고 호주에 살았을 때에는 배송이 너무 느려 주문한 걸 잊을 때쯤 택배가 도착했던 것 같다. 요즘엔 새벽 배송이다 로켓 배송이다 해서 전 날 저녁에 주문해도 아침에 배송이 바로 오던데(택배기사님들 수고하십니다) 그런 시스템을 활용해서 경비아저씨나 옆집에 폐가 안 가도록 해야겠다. 남편이 연애 시절 가끔 내 자취방에 놀러 왔을 때 내가 쌓아 놓은 박스들을 보고 노다메 쨩-노다메 칸타빌레 드라마의 주인공-이라고 놀리곤 했는데 결혼하니 분리수거하는 남편이 있어 더 이상 노다메가 아닌 나! 앞으로도 잘 부탁해,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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