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구 YANGGU Mar 28. 2018

나는 조종사의 아내다 - 가방 털이범

가방을 털어라

남편이 퇴근한다.

반기고 수고했다며 꼭 안아준다.

그리고 가방을 연다.

내가 필요한 것만 꺼낸다.



내가 남편에게 지정해서 사 오라는 물품도 있고(대게는 해외에서만 팔거나 해외에서 더 싼 물품) 남편이 나한테 필요할 것 같아(대게는 먹을 것이나 화장품) 사 오는 물품도 있다. 남편 퇴근 후에 남편의 가방을 확인하는 아내는 조종사들의 아내뿐일 것이다. 해외에서 사는 물품이 어떻게 보면 뻔하기 때문에(이미 나는 쇼핑리스트를 꿰고 있다) 남편이 어느 비행을 갔다 오느냐에 따라 나의 가방 털이가 결정된다.



남편에게 무엇을 사 오라고 할 때에는 개수를 필히 지정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왼쪽의 사진과 같이 단 한 개만 사 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품명만 말해주면 잘 찾지 못하고 바로 영상통화가 오기 때문에 사진첨부는 필수다.



하지만 남편이 개수를 지정해주지 않아도 가방 가득 사 오는 것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초콜릿이다. 하루에 하나씩만 먹으라고 잔소리를 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초콜릿으로 가방 가득 사 온다.


가끔 가방 털이를 하다가 뒤를 돌아보면 남편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고 서 있을 때가 있다. 내가 가끔 남편보다 가방을 더 반길 때가 있기 때문이겠지. 승무원으로 근무할 때에 내 가방 안은 나 자신만을 위한 물건 가득이었는데 이렇게 남편이 나를 위한 물건들을 가득 담아오는 것이 고맙다. 쇼핑해 온 물건보다 나를 생각하면서 샀을 그 마음이 고맙다.

작가의 이전글 조종사 부부의 여행 이야기 - 하노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