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구 YANGGU Aug 03. 2018

나는 조종사의 아내다 - 여보 저 뒤에 있어요

남편이 조종하는 비행기를 탈 때

지난 1년 반 동안 남편을 따라 비행을 많이도 다녔었다. 남편 스케줄에 따라가기도 하고 휴가를 맞춰 여행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둘 다 근무하던 시절에 딱 한번 같이 비행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조종사와 승무원의 인원이 매우 많아 같은 비행에서 만날 수 있는 확률이 낮다), 그때는 결혼 전이기도 하고 같이 비행했던 사람들도 팀원들이 아니고 해서 비밀로 하고 다녀왔던 기억이 있다. 해외에서의 스테이가 긴 비행은 아니고 1박 2일의 짧은 일본 비행이었는데, 일본 도착 후 둘이 몰래 로비에서 만나 교자와 라멘을 먹으러 갔었다.


여하튼 그 이후로 남편이 조종하는 비행기를 결혼 후에 처음 남편을 따라 비행을 가면서 타게 됐는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남편의 안내방송을 들으며 혼자 키득키득 웃으니 옆의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다. 남편은 부기장이라 기장이 외국인일 경우(외국인이 한국어 방송을 할 수 없으니)에만 한국어 방송을 남편이 하게 되는데, 남편 특유의 말투와 버릇이 섞인 방송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면서 녹음도 했던 기억이 난다(기장이 한국인일 경우, 영어와 한국어 방송 모두 기장이 함).      


결혼 한 이후로, 한 달에 한두 번꼴로 남편을 따라 비행을 가며 남편이 조종하는 비행기를 탔는데 처음엔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일하면서 수백 번, 아니 수천 번도 넘게 타본 비행기인데 떨리고 불안해서 계속 창밖만 보았더랬다. 원래 같았으면 착륙 때쯤 쿨쿨 자는 편인데 비행기는 이 착륙 때가 가장 위험한 걸 아는 나는 웬일인지 잠도 오지 않았다. 칵핏 안에서 잘 하고 있나, 졸리지는 않나, 기장님한테 혼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태산이었다.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남편은 쉬는 시간 때 잠시 내가 앉아 있는 자리로 와서 내가 잘 있는지 보고 가는데 조금이라도 더 자라고 얼른 다시 보내곤 했다. 하지만 그것도 초반뿐, 이제는 남편을 따라 비행을 가는 것이 익숙해진 나는 비행 중이나 착륙 때나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잠이 들고 쉬는 시간 나의 얼굴을 보러 온 남편에게 같이 간식 먹자고 조르기도 한다. 하지만 경험자로서 비행 중 쉬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몇 분 얼굴 보고 얼른 돌려보낸다. 일할 때에는 나에게 신경 쓰지 않고 일에 집중하고 현지에서의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이 나는 더 편하고 좋기 때문이다.


남편이 조종하는 비행기를 탄다는 건,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기도 하고 뿌듯한 기분도 든다. 그리고 나 역시 남편에게 자랑스러운 아내란 걸 알기에, 앞으로도 평생 우리 부부가 지금처럼 서로 존중하고 아껴주는 부부로 살 수 있기를.

작가의 이전글 조종사 부부의 여행이야기 -이탈리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