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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실 Dec 08. 2023

니스와 생폴드 방스, 스미기 혹은 젖기

보름간의 프로방스 여행기

니스에 도착하니 긴 여름해가 서쪽으로 베겟머리를 틀고 있다.  빗살무늬 토기같은 빛은 그래도 여전히 따갑다.    여행할 때면 시간이  내 걸음보다 더 잰 걸음으로 달리는 느낌이다. 우리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 아니, 모녀가 되어 해변으로 뛰었다.

'지중해의 레이디 니스'는 나보다 딸이 더 로망하던 곳이다. 아이러브 니스 조형물에서 사진을 한껏 찍고  해변으로 들어갔다.

니스의 상징인 해변은 모래가 아니라 자갈밭이다. 폭신하고 부드러운 비단모래만 접하던 발이 비명을 지른다. 

아이고 내 발바닥. 으악. 조심해. 모서리 밟았어. 에궁 아파라 ~

우리는 어기적 거리며 해변까지 걸어나갔다. 뒤에서 보면 펭귄 두 마리가 걷고 있는 것 처럼 보였을 것이다.

달력에 나올 듯 예쁜 몽골 초원에서 모기한테 왕짱 뜯기고 한 달 내내 벅벅 긁었던 과거사가 자연스레 소환됐다. 역시 풍경은 멀리서 볼 때 아름답다.  


촤르르  촥촥.......

자갈 사이로 지중해의 잉크빛 물이 스며든다.

해변에 자리 잡은 연인들의 실루엣이 바닷물에 젖는다. 

아! 이것이 바로 개그우먼 박나래가 말한 니스비치의 황홀이 아닐까.


니스해변에 즐비한 펍과 레스토랑 까페에 사람들이 가득찼다.  서서히 침몰하는 태양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마시는 사람들. 자세히 살피지 않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술 아니면 음료겠지뭐.

그런데 해변을 감상하는 눈들이 적지 않았다. 파도, 바다, 일몰,  거기에 플러스 해변족 ..... 흠. 뭐지?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듯한 이 느낌은.

아무튼 그들은 합법적으로 관음증을 즐기고 있었다. 내 예리한 촉수가 그렇게 결론을 땅땅 내렸다. 


사족.

니스에는 대추야자, 종려나무, 비파나무, 부겐빌레아 꽃나무가  풍성했다. 온화한 지중해성 기온 덕이다. 가는 곳마다 나무에 눈이 갔다. 나무와 풀꽃 러버인 내게는 당연한 일.

니스 해변.  긴 그림자의 주인들은 침착한 듯 하지만 헉헉대고 있다.

일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니스 사람들

니스 해변 뒷골목에 그득한 노천 까페

지나가다 갯한 풍경. 고풍스런 이 건물의 용도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아니다.  고등학교다. 캬! 남다른  클래스좀 보소

촤르륵  촥촵..지중해 푸른 물결

니스의  공원.  물이 얕게 깔려 멋진 반영을 만든다.  아이들은 물 장난 치고 어른들은 멍 때리기


다음날

니스를 떠나 생폴드 방스로 향했다. 생폴드 방스는 유서 깊은 예술인 마을이다.

이브몽탕, 시몬 시뇨레 , 시인 자크 프레베르가 자주 찾았고  롤링스톤즈의 베이시스트였던 빌 와이드도 이곳에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내겐 마르크 샤갈만이 돋을새김 됐다.  몽환적이고 이국적인 화풍을 추구한 초현실주의 화가 샤갈의 무덤이 있고  그의 체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니스에 샤갈 미술관이 있는데 아쉽게도 들르지 못했다.

생폴드 방스  좁은 골목길에  아뜰리에가 넘쳐난다.  이 작은 요새 마을에  수 많은 아티스트가 깃들어있다는 반증이다. 걷다 돌아서면 그림이 보이고  골목길 안쪽에는 조각품 가게가 보물처럼 숨어 있다. 

유럽 중세 마을의 특징 중 하나는  마을 중심에 광장이 있다는 사실이다.

생폴드방스도 작지만 광장이 있다. 작은 광장에서 실타래처럼 풀려나간 골목들이 그림과 예술의 아지트가 된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답고 부러운 광경이다.


샤갈. 

러시아에서 태어난 유대인 혈통에  지독히도 가난한  집안의 장남.

아버지는 청어를 엄마는 야채를 팔았다고 한다. 프랑스로 건너와 미술공부를 하지만 가난과  러시아에 있는 연인 벨라에 대한 그리움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다. 

벨라와 결혼하고 그의 그림은 화사함이 넘치는 화풍으로 일신한다.  남녀가 손을 잡고 허공으로 두둥실  날아오르는 '산책',  연인을 안고 쓰다듬는 사내와 행복한 여자가 나무에 누워 있는 '라일락 속의 연인들'이  이 시기에 그려졌다. 허공을 나는 남녀 그림은  사랑스럽고  행복한 느낌을 물씬 풍긴다.

나치의 습격으로 인한 미국 망명,  벨라의 죽음이 가져온 상실을  자기만의 그림으로 표현한 샤갈. 늘그막에 안정을 찾아 98세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다 생폴드방스 유대인 묘지에 묻혔다.


생폴드방스 계단과 좁은 골목에 샤갈의 흔적이 묻어 있다 생각하니 감격스러웠다. 하여 천천히 걷고 내려오고 또 올라갔다.  다리가 아프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 

샤갈의 무덤에 누군가 하트 액자를 갖다 놓았다. 작은 조약돌을 얹으며 나는 샤갈의 그림들을 떠올렸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대가에 대한 나만의 헌사였다. 분홍 부겐빌레아꽃이 샤갈의 무덤을 향해  한사코 피어있는 6월의 어느 한나절. 샤갈에 젖은 나는 어느새 생폴드방스에 스미고 있었다.



생폴드방스의 좁은 골목길. 요새 마을의 특징이다.

생폴드방스 주변 마을 풍경.  높은 산 없이 완만한 구릉지대라 시야가 확 트이고 시원하다.

생폴드방스 초입

초현실적인 미술작품

골목 끝에 콕 박힌 조각품 아뜰리에

샤갈 무덤 가는 길에 화사하게 피어있는 협죽도 

생폴드방스의 공동묘지

마르크 샤갈 무덤 

꽃 대신 작은 조약돌을 얹으며 샤걀을 그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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