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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실 Jul 08. 2024

닭발 대신 세모, 네모, 동그라미를

       

어릴 적 나는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았다. 집과 꽤 떨어진 언덕빼기에 앙상한 실루엣으로 서 있는 나무는 내가 힘들 때나 외로울 때 친구가 돼주었다. 


어느날, 그 나무가 너무 궁금해 찾아갔다. 나무는 주변에서 흔히 보는 그저 평범한 아카시아였다. 게다가 잎도 별로 없고 볼품도 없었다. 그래도 내겐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중한 나무였다. 나는 나무를 꼭 껴안았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따뜻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프랑스 작가 장지오노의 단편소설 ‘나무를 심는 사람’에 나오는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에는 황폐한 프로방스 지방에 홀로 나무를 심는다. 도와주기는커녕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하며 비웃는 이웃들. 엘제아르는 아랑곳 않고 마치 성스러운 의식을 거행하듯 날마다 비탈에 나무를 심고 물을 준다. 그가 그토록 나무 심기에 매달린 것은 1차 세계대전이 앗아간 그의 아들과 아내에 대한 미칠듯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수십 년이 지난 뒤 그곳은 푸른 나무로 뒤덮인 풍요의 땅으로 변해 있었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양치기의 상처가 아름다운 숲으로 승화된 것이다. 우주적 복수이자 찬란한 자기 회생에 나무가 오브제로 쓰인 것은 당연하다. 나무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서 바라는 것의 전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가로수를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지나친 가지치기로 흉물스럽게 변한 나무가 많아서다. 큰 잎으로 땡볕을 가려주던 플라타너스가 닭발 모양으로 서 있다. 잎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 삭막하다. 광합성을 해야 살 수 있는 나무 입장에선 사형선고나 다름없을 것이다. 도심 도로변의 대다수 가로수가 이런 처지에 놓여있다. 은행나무는 싹둑, 후박나무는 뭉툭, 꽃댕강은 움푹 잘려나갔다. 이런 나무들은 누렇게 시들거나 말라 죽는 경우가 많다. 


산책할 때마다 길가의 나무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아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유럽에 가보면 도심의 무성한 가로수가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 아래 노천 까페에서 차를 나누는 사람들은 유럽의 시그니처다. 부럽고 멋진 풍경이다. 수형을 거스르지 않을 정도의 가지치기가 나무를 건강하고 싱싱하게 만드는 비결인 것 같다. 반면, 우리는 간판을 가리고 전선에 닿는다는 이유로 가지치기를 정말 무지막지하게 해댄다.(과도한 가지치기에 대한 시민의식이 높아지면서 닭발 나무에 대한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나무가 무성한 도시에 사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견디는 힘도 커진다고 한다. 우리가 지킨 나무가 우리를 지켜주는 선순환의 고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이제는 닭발 나무 대신 나무의 수형과 특징을 살린 가지치기를 보고 싶다. 둥글거나 네모지거나 사랑스런 세모 나무가 서 있는 풍경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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