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렝게티의 초원을 떠올리면 야생은 둥근 모양이다. 크고 작은 곡선을 그리며 흘러가는 강과 습지, 그곳에 사는 동물과 나무도 큰 틀에서 보면 둥근 형태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는 야생은 네모 모양이다. 바로 아파트 화단이 야생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아파트에 야생이라니? 반문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호기심을 가지고 화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내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은밀하고 생생한 야생이 각자의 스타일로 살아가고 있음을 목격하게 될테니까.
아파트 화단에서 야생이 목격된 것은 올해 봄이었다.
동백 사이로 제법 씩씩하게 자란 방풍 나물이 눈에 띄었다. 보통 해안가나 바람이 강한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인데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이 자리를 잡은 듯했다. 너무 신기하고 반가워 틈날 때마다 방풍나물을 보러 갔다. 방풍은 여름내 맹렬히 기세를 올리며 나무처럼 튼실하게 가지를 뻗었다.
펼친 우산 같기도 폭죽 같기도 한 잎들은 지난 9월 끝자락에 여문 씨앗 몇 자루를 남긴 채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나물로만 먹던 방풍의 한해살이를 목격한 즐거움은 긴 여운을 남겼다.
방풍나물에 홀려 드나들다 발견한 두 번째 야생은 가지였다. 무성하게 자란 맥문동 사이로 무언가 다른 실루엣이 보였다. 헤집고 찾아보니 제멋대로 자란 가지였다.
이파리 사이로 두 개의 열매를 달고 있는데 아래쪽은 이미 쥐들이 먹방파티를 끝낸 듯 꼭지만 달려 있었다. 하나라도 여물게 키울 요량이었는지 가지는 비바람 속에서도 남은 열매를 지켰다.
한 달이 지나 가지 열매가 제법 튼실해졌다. 쥐한테 뺏길세라 나는 가지를 따려 손을 댔다. 순간, 가지 꼭지가 따갑게 손을 찔러댔다. 자신은 자기가 지키는 야생의 룰이 강렬하게 전해졌다.
누군가에 기대거나 의지하지 않는 날것의 생이 보랏빛 갓처럼 따갑고 싱싱했다.
이 화단이 작은 야생을 품은 것은 아파트 관리자들의 발길이 뜸해진 덕분이다. 그들이 부지런히 풀포기를 뽑아내던 지난 몇 해의 화단은 단색화를 보는 것 같았다 (물론 그분들의 노고를 폄하할 마음은 조금도 없다.)
그런데 올해 화단엔 그간 보지 못했던 야생화와 나무까지 깃들어 풍성한 색채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방풍나물과 가지가 풀이라면 초피는 한사코 뿌리 내린 의지의 작은 나무다. 초피 특유의 강렬한 향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비바람에 뜯긴 성근 잎을 내밀고 있다.
지난 여름의 땡볕과 작달비의 회초리를 온몸으로 받아낸 결과다. 그 옆에 달개비와 강아지풀이 자라고 쥐방울덩굴도 뻗어간다.
생명의 인드라망이 펼쳐지는 모습은 진솔하고 아름답다.
자연의 리듬을 따라 살아가는 생명들이 네모난 야생을 빛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