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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실 Aug 06. 2023

도끼와 거울

우리 곁의 상징에 대해

    

즐겨 찾는 까페의 화장실 표식에 눈이 갔다. 동그라미를 어디론가 데려가는 듯 화살표가 사선으로 그려진 모양과 반대로 손잡이 달린 동그라미.

전자는 도끼고 후자는 거울이라 한다. 도끼 모양은 남자를 거울은 여자를 의미해 남녀 구분을 할 때, 특히 화장실에 많이 쓰인다.

많은 상징과 이미지 중 왜 하필 도끼와 거울일까.

도끼는 인류가 생겨난 이래 생존에 꼭 필요한 도구였다. 선사시대 유물 중 돌도끼가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그런 연유다. 도끼를 든 주체는 주로 남자였으리라. 서너 명의 남자가 횃불과 도끼를 들고 사냥하는 그림이 자연사박물관을 장식하고 있다. 이후 도끼는 남자를 떠올리는 물건이 됐다.

거울은 여자의 상징물이다. 이런 우화가 있다. 멋진 장신구를 신에게서 한 아름 선물 받은 여인이 있었다. 한껏 신을 찬양한 여인은 정성 들여 치장했다. 그러고는 무언가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장난끼 많은 신은 그것을 감춰 버렸다. 지친 여인은 털썩 주저앉아 이번엔 신을 원망했다. 그것은 바로 거울이다. 황홀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건 여자에게 형벌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렇게 도끼와 거울은 남녀의 원형적 상징물 중 하나가 되었다.

나는 까페에서 주로 책을 읽는다. 커피 향을 배경 삼은 독서는 그 자체로 향기롭다.

‘책은 도끼다’라고 카프카가 말했다. 우리 안의 얼어붙은 타성을 부숴야 새로운 인식의 창이 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끼가 되지 못하는 책도 간혹 눈에 띈다. 얄팍한 처세술이나 시류에 영합해 급조한 티가 나는 부류. 읽고 나도 깨우침이 빈약하거나  뒷맛이 씁쓸하다. 독서의 궁극적 목적은 지혜를 얻는 것이다. 하여 도끼는 지혜의 도구다.

책은 또 거울이기도 하다. 나를 돌이켜 성찰하는 단계가 없다면 우리의 성장은 담보할 수 없다. 혼자서는 무망(無妄)한 세계도 책을 통해 인식의 도약을 연다. 자기 얼굴을 스스로 볼 수 없듯 독서 없이 온전한 세계로 나아가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책은 미더운 손거울이다.

남녀를 구분하는 표식이 책에서는 지혜의 바다로 가는 도반이 된다. 

‘따로 또 같이’의 도끼와 거울처럼 올 한 해 청신한 관계를 많이 맺으며 살고 싶다.     


고훈실 동화작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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