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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Aug 25. 2023

더 많이, 더 멀리 데려간

03 | 영어(English)

경험의 폭을 넓혀준

가장 큰 요인을 고르라면 단연코 영어(English)다. 영어에 흥미를 가지고 영어공부를 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었고, 내가 원하는 대학에서 원하는 새로운 경험들을 했기 때문에 지금 원하는 걸 하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바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위스키와 칵테일에 대한 정보는 한국어로만 검색했을 때보다 영어로 검색하면 정보의 양과 질이 달라진다. (훨씬 많은 양의 칵테일 레시피와 다양한 변주들이 나온다!) 영어를 아주 잘 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영어라는 언어를 알고 있으면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최소 2배 이상이 된다.




반에서 꼴찌만 하던 아이

처음부터 영어를 좋아하진 않았다. 특히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쌍둥이 누나와 같이 동네에 EIC어학원이라는 데를 다녔는데, 항상 반에서 꼴찌를 도맡아 했다. 당시 외고에 진학하려고 준비하던 같은 반 누나들을 보면서 '아니, 무슨 영어를 저렇게 잘하지?' 라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Grammar in use에 Practice 문제를 숙제로 풀어가려면 답지를 베껴야 할 정도로 영어에 대해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주어, 동사를 찾으라는 선생님 말씀에 계속 명사를 동사라고 표기해서 발표할 때면 웃음거리가 되곤 했다. 


그렇다고 영어에 자신감이 없었냐, 그건 아니었다. 당시 학교에서 시험을 보면 이상하게 점수가 잘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보고 들은 게 있어서 문법적으로 맞는지 틀린지 느낌적인 느낌으로 맞추긴 맞췃던 것 같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학원에서 매일 꼴찌를 했음에도 틀린 답, 맞는 답을 들으면서 어떤 게 틀린 문장이고 맞는 문장인지를 나도 모르게 익히고 있었다. 


그래서 근자감인 동시에 고향을 벗어나고 싶어서 외고 시험도 봤으나 당연히 불합격. 집앞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슬슬 수능이라는 시험을 앞두고 나니 내가 영어를 온전하지 못하게 알고 있다는 게 확 느껴졌다. 특히 시제에 대해 이해가 많이 부족했고 (이해할 마음도 없었던 것 같다) 문법 문제는 항상 찍었는데, 4지선다형이나 5지선다형이라서 확실히 아닌 2~3개를 지우고 나면 1~2개 사이에서 50% 확률로 맞췄다. 그래도 맞는 경우가 많았던 지라 '영어공부 안해도 이정도는 맞는건가' 싶었는데 한 두문제 차이로 대학이 바뀌는 게 수능이라는 걸 보면서 한 두문제를 명확히 알고 맞춰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씨가 있어야 불이 붙지

어떻게 하면 문법문제를 다 맞추지, 어떻게 하면 알면서도 모르는 얽힌 실타래를 풀어내지 라는 생각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다 문득 집어 든 집에 아무렇게나 꽂혀 있는 문법 책 한 권. 가만 되돌아보니 학원에 다닐 때도 스스로 문법책을 풀어본 적이 없었다. 쌍둥이 누나의 답지를 베끼거나 답안지를 몰래 들여다보며 그 순간에만 답을 '확인'하려고 했지 굳이 '이해'하려고 머리를 싸매고 애쓰지 않았다. 


느낌적으로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문법에 대해 책을 다시 들여다보니 내가 모르던 부분들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문법책에 있는 기본적인 Practice 문제부터 Advanced 문제까지 하나하나 '왜 이 답일까?'를 고민하며 문제를 풀었다. 특히 가장 쉬운 Practice를 풀더라도 '왜?'에 집중해서 문제를 풀었는데, 그러면서 문제를 보니 출제자의 의도가 보이는 듯 했다. 결과적으로 수능에서도 2점짜리 1문제를 (다 맞춰두고 왜 2점짜리를 틀렸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가지만...) 틀려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가 '나는 목표가 뚜렷하게 정해져야만 확실히 달릴 수 있는 성격'임을 인지했던 순간이었다. 여지껏 영어공부를 하면서 불편함을 느낀적이 없었고 내신에서는 항상 느낌으로 잘 맞췄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할 필요성을 몸소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수능을 잘 봐서 꼭 서울에 있는 '외국어를 전문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대학에 가야만 당시 내가 좋아하던 가수 에이브릴 라빈(Avril Lavigne)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라빈을 보기 위해 '한국외대'에 진학하는 게 곧 불씨나 다름없었다. 


불씨는 금방 사그라들지

그렇게 막상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부에 입학했다. 특히 모든 수업을 영어로만 진행하고, 외국인 교수들로 교수진이 꾸려진 국제학부는 저절로 입이 트일 수 밖에 없는 환경일 거라는 기대감을 주기 충분했다. 허나 문제는 1학년은 꼭 들어야 하는 전공필수과목인 정치학개론을 듣기 시작하기 전부터 발생했다. 신입생OT에 가니 당시엔 정확히 몰랐지만 해당 학부는 보통 외국에서 오래 살다온 교포들이나 해외학교진학을 목표로 꾸준히 공부해온 학생들이 입학하는 학과였고 특히 우리 학부에는 교포 혹은 교포나 다름없이 영미권 국가에서 수학을 하다 와 영어가 모국어나 다름없는 실력을 가진 수시생들이 대거 포진해있었다. (수시생 30명에 정시생이 10명 남짓?) 심지어 서로 영어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동기들과 선배들을 보면서 '내가 수능에서 영어성적을 잘 받고, 공부를 잘해서 왔다' 하더라도 이건 그런 수준으로 비빌 정도가 아니라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처음 들은 수업인 정치학개론은 더 가관이었다. 외국인 교수님이 한명한명 영어로 질문을 하는데, '아, 제발 나는 시키지 말아라...'라는 생각이 매 수업시간마다 들 정도로 영어로 말을 하는 게 두려웠고 어버버 어버버 할 때마다 아무도 비웃는 사람은 없지만 마치 '그런 실력으로 이 학부에 어떻게 들어왔냐'라는 시선을 받는 듯한 느낌에 자신감이 뚝뚝 떨어졌다. 나중에 알았지만 한국에서만 영어공부를 한 정시생들은 이런 과정을 다들 겪는다고 하더라. 정시생이지만 당시에 영어를 매우 잘했던 선배가 자기도 처음에 입학했을 때는 나와 비슷한 실력에 똑같은 감정을 겪었다며 위로를 해주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살던 세상은 정말 우물 안 이라는 걸 느꼈다. 그렇지만 너무 큰 실력 격차에 크게 자신감을 잃으면서 수업을 회피하기 시작했고 1학년 1, 2학기 연속으로 학사경고를 받으며 처참히 마감하고 말았다. 




그리고 도피와 다름없는 인도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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