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하게 중간에 포기하는 것도 멋있어요.
며칠 전이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데 창 밖으로 달리는 초등학생이 있더군요. 이렇게 더운데 열심히도 뛴다, 생각하면서 '혹시 이 버스를 타려고 뛰는 건가?'라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진짜 열심히 뛰면 마침 신호가 바뀐 횡단보도도 건널 수 있고 여러모로 타이밍이 맞아 보였거든요.
그런데 초등학생 아이는 한참을 달리다 멈추더군요. 횡단보도의 불은 아직 초록색인데 건너지 않았어요. 신호는 곧 깜박이더니 빨간불로 변했고, 버스도 마침 출발해서 그 아이가 어디로 갔는지 보지 못했습니다. 아이는 왜 그리 열심히 달렸던 걸까요? 아니면, 초록불이 깜박이고 곧 신호가 바뀔걸 알고 멈췄던 걸까요?
그런데 이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제 마음속에서는 비록 '정신없이 달려. 달려서 목적을 달성해 봐.'라는 울림이 있었지만 멈춰 선 초등학생이 현명하게 보이기도 했으니까요. 일을 하다 보면 아실 거예요. 이 프로젝트가 지금 산을 향해 가고 있는지, 목표지점으로 가고 있는지를요.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갑자기 일이 막 꼬일 때가 있죠. 사실 저는 프로젝트가 너무 순탄한 것도 의심스러워서, 적당히 꼬이는 게 정상적인 프로세스라 생각하는데요. 적당히도 아니고 정말 막장급으로 꼬일 때가 있습니다. 이때 멈췄어야 했는데요.
보통 우리는 달릴 줄만 알고 적당한 때에 멈추는 법을 잘 모릅니다. 달렸으니 끝까지 달려야 하는 거예요. 어쨌든 내가 합정역에서 홍대역까지 뛰기로 했으면, 홍대역까지 그냥 달리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무조건 목표를 향해 달려서 무엇하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과정을 즐기자는 이야기는 아니고, 무작정 뛰어도 좋은 결과가 없다면 중간에 멈춰도 좋지 않을까라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요즘 깔끔하게 중간에 포기하는 것도 멋있더라고요.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은 주변을 잘 보고 상황파악과 계산을 빠르게 한다는 거거든요.
목표를 향해 무조건 달려라,라는 말은 이제 옛 말이 된 것 같습니다. 주변을 보고, 아 이거는 진짜 아닌데? 싶으면 빠르게 포기하는 방법도 필요하지 않나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