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벨뷰의 정원 Jan 06. 2024

배우자와 전쟁을 피하는 법


나는 꽤 오랫 동안 결혼을 피해왔다.


연애도 깊은 연애는 피했다. 한 인간을 바닥까지 들여다보는 것이 버거웠다. 이런 저런 사랑의 언어와 시간을 요구했던 연인들에게 피로함을 느꼈다. 한사코 연애보다 일을 우선시하는 내게 지친 연인이 “네 논리에 따르면 난 그냥 너 살고 싶은대로 내버려 둬야 하는 거네. 그럼 난 뭐야? 내가 너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게 있긴 한거야?”라고 물었을 때 나는 “넌 내게 뭘 요구할 권리가 없어. 오로지 부탁만 할 수 있을 뿐이야.”라고 차갑게 말했다. 낙심한 그 애를 두고 돌아서면서 내심 ‘나라는 인간, 참 정 떨어진다.’라고 생각했다.


그래, 이렇게 온 몸으로 타인의 요구를 거부하는 사람은 혼자 살아야지.




하지만 역시나 세상은 내가 계획한대로 되지 않아서 집돌이 중의 집돌이, 가족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큰 사람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는 ‘모든 사람을 공정하게 대하는’ 내 태도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가까운 사람과 먼 사람을 철저히 분리해 에너지를 배분하는 그의 태도가 지나치게 이해타산적으로 보였다. 그는 언쟁이 벌어지면 끝까지 대화하고 풀고 싶어했고 나는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다. 그는 언제나 합리적이기를 바라는 내 모습이 종종 거대한 벽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이렇게 삶에 대한 관점과 태도가 매우 다른 우리지만, 다행스럽게 싸우는 일은 드문 편이다. 신혼 때 한 달에 한 번 정도 싸웠고 3년이 된 지금은 3개월에 한 번 정도 싸운다. 언쟁이 있어도 하룻밤을 넘기는 일은 드물다. 남편과 나는 우리가 잘 싸우지 않는 이유를 다음 정도로 생각했다.


1. 옳고 그름에 대한 관점이 비슷하다.

2. 상대방의 본질적인 속성을 바꾸려 들지 않는다.

3. 남편은 나의 꿈을, 나는 남편의 꿈을 존중한다.


꽤 그럴싸한 이유들이다.






그러다가 며칠 전 <최성애 박사의 행복수업>(해냄, 2010)을 읽고 우리가 싸움을 피한 비결이 다른 데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인간발달학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워싱턴주립대 존 가트먼 교수의 관계개선 커리큘럼 마스터 100인 중 한 명으로 우리나라 부부들을 위해 가트먼식 워크숍을 진행하는 연구소를 운영하는 분이다.


14년 전 출판된 이 책엔 지금보아도 생생한 깨달음이 담겨있다.


- 부부 갈등 중 69%는 ‘영속적’ 갈등으로 아무리 대화를 해봐도 풀릴 수 없는 문제다. 해결보다는 ‘관리’를 지향해야 한다. 이 문제는 나의 배우자에게 매우 아픈 부분이구나, 나는 논리적으로 이를 완전히 이해하거나 해결할 순 없겠구나, 이 문제가 매일매일의 배우자의 행복에 너무 큰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도와주어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접어야 한다.

- 부부의 갈등지수는 소득수준, 인종, 출신지, 외모, 가정환경, 직업 등과 무관하다.

- 가트먼 박사 팀이 3,000 커플을 30년간 관찰한 결과, 부부의 갈등지수를 예측할 수 있는 유의미한 지표는 단 하나, ‘말의 형식’이었다.

- 행복한 부부도 갈등이 있고, 서로 부정적인 말을 주고 받는다. 하지만 그들은 비난, 경멸, 회피를 잘 하지 않는다. 특히 ‘경멸’, 인신공격적 발언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 또한, 행복한 부부는 부정적인 말보다 긍정적인 말을 20배(!!!) 더 많이 한다. 그들은 결혼생활 동안 1:20의 황금률을 유지한다. 즉 평소에 칭찬을 꾸준히 적립해놓아야 갈등도 부드럽게 대처할 수 있다.

- 타인들이 보는 앞에서 배우자의 흠을 얘기하면 아무리 농담조라도 배우자는 경멸을 받는다는 기분을 느낀다. 고로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닌 이상) 반드시 피해야 한다.





남편과 곰곰히 생각해보니 우리는 실제로 ‘관리’의 영역으로 넘긴 갈등의 카테고리가 꽤 있었다. 이 레드테입이 붙은 주제에 대해서는 (몇 번 다른 관점을 이야기했다가 ‘앗뜨거!‘한 후에) 서로 오로지 청자의 역할을 하려고 노력한다. 각자에게 아픔이 있는 이 주제들은 빈번히 우리 대화에 등장한다. 그러면 ’지겨워, 또 그 이야기야.‘ 생각할 때도 있지만 절대 입 밖에 내진 않는다. 이 사람이 다 말하고 마음을 털어내고 오늘 하루 마음 편하길 바라면서.


‘너 화법’(당신은 왜 양말을 뒤집어서 벗어!) 대신 ‘나 화법’(아이고, 양말 뒤집다보니 힘드네-)을 쓰면서 상대를 비난하지 않는 것은 어릴 때 <비폭력대화>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은 후 내가 실천해 온 것이다. 남편이 신혼 초반에 ’자기는 정말 배려가 없다.‘는 식의 발언을 종종 했는데, 남편도 언젠가부터 나 화법을 습득했다. 요즘은 ’내가 외로운 마음이 들어.‘ ’아까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아팠는데 참고 넘기려 했는데 자꾸 힘들어져서 이야기할게.‘라고 말을 해 준다.


1:20은 남편의 예민하고 살뜰한 성격 덕에 내가 연마하게 되었다. 남편은 긍정적인 말과 부정적인 말에 대한 반응이 무척 빠르다. 오늘 멋있네? 요리해줘서 정말 고마워! 자긴 정말 다정해! 이런 말들을 눈에 띄게 좋아한다. 보통은 민망해서 답을 안하거나 ‘어제랑 똑같은 데 뭐 멋있긴.’이라고 할 수도 있을텐데, 남편은 바로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한참 부족하니 더 많이 해달라고 한다. ㅎㅎ 그런 반응을 보노라니 비용대비 효과가 좋아 습관적으로 칭찬하는 사람이 되었다.


남편에게 “나 참 칭찬이 인색한 사람이었을텐데, 자기 덕분에 많이 늘은 것 같아.”라고 말을 했더니 남편은 “음~ 그런 것도 있는데. 신혼 때부터 당신은 리액션이 좋았었어.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어? 정말? 그래? 이렇게 바로바로 귀를 기울여주고. 난 그것도 되게 긍정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였거든. 아마 장모님이 당신한테 그렇게 해주셨던 게 아닌가 싶어.”라는 답이 돌아왔다.


남편이 이런 생각을 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역시 고마움을 표하니 고마움의 표현이 돌아오고, 더불어 엄마에까지 감사한 마음이 든다.



성격 차이나 관점의 차이보다 ‘말을 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니.

1:20의 원칙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 정도는 자연재해나 자녀양육 등의 난제가 눈 앞에 놓이더라도 어떻게든 해낼 수 있겠지.



얼마 전 옆 집 노부부와 식사를 하다가 할아버지께서 “Running a relationship is much more difficult than running business.”라는 말씀을 하셨다. 캐나다의 유명한 자산관리 브로커였다가 은퇴하신 그 분은 전 세계에 자산이 있고 사모님과 오손도손 쇼핑을 다니는 사이이신데도, 여전히 부인과 매일 같이 언쟁을 하고 갈등을 봉합하며 살고 계신다고 하셨다. 그래도 서로 음식을 챙겨주는 모습, 상대를 추켜올려주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 분들은 매일 20을 쌓고 계시겠지.



이 이치를 깨닫고 너무 기쁜 마음에, 좀처럼 연락하지 않던 시아버님께 연락을 드리고 책을 보내드렸다.

결혼식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오던 날 아버님께 쓴 편지에 “식사하시고 어머님께 ‘맛있게 잘 먹었어.’ 한 마디만 꼭 부탁드려요.”라고 적었었는데 과연 내 소원을 들어주셨는지 모르겠다. 이 책을 두 분께서 읽으시면 너무 좋으련만. 남편은 절대절대 기대하지 말라고 하지만, 난 조금은 기대를 남겨두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의 일이 편안하신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