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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복 Feb 06. 2023

마음의 유리

마음사전, 김소연


차단되고 싶으면서도 완전하게는 차단되기 싫은 마음.

그것이 유리를 존재하게 한 것이다.

그러고 싶으면서도 그러기 싫은 마음의 미묘함을 유리처럼 간단하게 전달하고 있는 물체는 없는 것 같다.


김소연, 마음사전




유리잔에 담긴 커피의 색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탁하지만 맑은 물성이 지닌 자유스러움. 베어나는 향처럼 비치는 내 신체의 일부도 아련하다.

마음을 생각하면 물컹한 무엇이 명치에서부터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마음’ 일까, 아님 ‘감정’ 일까.


나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생 무렵이었다. 감수성이 예민하다는 평을 종종 듣곤 했던 아이가 품을 수 있는 타당한 의구심이었다고 생각한다.

제일 먼저 찾은 손쉬운 방법이 도서관이었고, 그때부터 마음을 파헤치기 위해 수많은 책장을 넘겼다.

손에 닿는 대로 읽던 아이는 어느새 좋아하는 작가가 생겼다. 그 작가가 가진 특유의 문체가 나의 취향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무렵, 닥치는 대로 그 작가의 책을 읽었다.

(애석하게도 그때 내가 좋아했던 작가가 누구였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작가의 자취를 쫓기 시작한 독서는 나를 쓰는 ‘아이‘로 만들었다. 글짓기 대회는 내게 취미에 가까웠다.

대회에서 받았던 상장은 나의 기쁨 이라기보다 부모님의 자랑과 과시욕을 충당시키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것만 채워 주면 내내 책 속에 빠져 지내는 시간이 내게 허용되었기 때문에 기꺼운 마음으로 상장을 안겨 드렸다.

그날부터 시작된 끄적임의 개인 역사는 지금까지 이어져서 꼬맹이들에게 ‘쓰기의 멘토’가 되기도 하고, 가끔은 어머니들의 ‘작은 멘토’로써 응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닿기도 한다.


그런데 쓴다는 것은 고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얀 지면 위에서 깜빡이는 커서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벅차오르는 막막함을 주체할 수 없다.

대체 무엇을 쓰고 싶은 것일까. 들키고 싶은 그 무엇, 그러나 적당히 감추었으면 하는 바람들.

그 양가적인 마음이 턱 끝까지 대롱 대롱 매달리면, 그 제서야 어쩔 수 없다는 듯 토닥토닥 어떤 글자들이 손 끝에 닿는다.


쓰는 것, 그 행위적인 의미와 감정적인 흔적이 지닌 어떤 것이 김소연 작가가 바라본 ‘유리’를 닮았다.

나에게 유리는 ‘쓰는 것’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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