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슬픔 사이
화가 난 게 아니라 슬픈 거였어요
상담을 하다 보면 분노로 어려움을 경험하는 분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직장 상사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아이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그 대상은 다양하다.
사실 화라는 것은 나를 지키기 위한 소중한 감정이다. 화는 내게 중요한 무언가를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드러난다. 우리의 온몸이 너에게 소중한 것을 지키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 이 화는 나의 슬픔을 가리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특히 부모에 대한 분노가 자주 그렇다.
부모 특히, 엄마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찬 내담자들을 자주 만난다. 성인이 되고 난 뒤 부모가 자신을 대했던 방식에 대해 어른의 시각에서 볼 수 있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나는 것이다. 특히 본인의 자녀를 키우면서 도대체 부모로서 어떻게 나한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분노감에 온 몸이 들끓기도 한다. 걷잡을 수 없는 분노는 결국 부모와 연을 끊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상담 장면에서도 부모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한가득 표현된다. 조용히 따라가며 그 분노의 파도가 지나갈 수 있도록 도와드리지만 늘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 아무리 화를 낸들 과거는 지나갔고 그 시간들을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더더욱 그 분노가 안타깝다.
그런데 상담실에서 외부의 대상(부모)에 대한 분노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분노의 파도가 잠재워지고 나면, 그다음에 찾아오는 감정이 있다. 분노의 파도가 지나간 잔잔한 마음속에서 이제야 슬며시 고개를 드는 감정이다. 그것은 바로 슬픔이다.
분노가 성난 파도와 같다면 슬픔은 잔잔한 바다 그 자체와도 같다. 묵진 하고 거대하다.
'슬픔'은 사실 상실에 대한 감정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 우리가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한 감정이다.
내가 원했던 방식의 사랑을 주지 못했던 부모님에 대한 상실감. 우리는 그 슬픔을 간직하기엔 너무 어른이 되어버려서, 어린아이라면 목놓아 울었을 장면에서도 나를 지키기 위해 가시를 세우고 분노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누군가, 특히 과거의 부모에게 화가 많이 난다면, 그 분노의 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거기에는 보살핌이 필요했으나 받지 못했던, 사랑이 필요했으나 받지 못해 차가움에 떨고 있는 어린아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에게 필요한 일은 무작정 화를 내는 일이 아니라, 그 어린아이에게 다가가 따스히 안아주고 위로해주는 일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