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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일럿대디 Dec 04. 2018

아이가 책대로 안된다고, 자책하지 말아요

책 몇권에 육아가 잘 되면, 못키울 사람이 없습니다.

앞서 ‘경험의 부족’을 언급하였습니다. 단편적 경험이 육아에 큰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죠. 하지만 정말, 이를 극복할 방법이 없을까요? 사실, 앞에서 말한 ‘간접적 경험’을 보다 ‘직접적 경험’에 근접하게 만들어 줄 도구가 있습니다. 바로 ‘책’이에요.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 몇 세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다”라고 말한 데카르트의 명언처럼, 잘 쓰인 한 권의 육아 책은, 한 명의 위대한 양육자와의 만남입니다. 이를 통해 ‘부족한 경험을 보완’할 수 있죠.

그래서일까요. 육아를 시작한다고 하면 사람들에게 책을 추천받곤 합니다. 저 역시 소개받은 책이 많아요. 간혹 선물로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모두 좋은 내용이었고, 밑줄 그어가며 “꼭 기억해야겠다”라고 다짐한 부분도 꽤 되었어요. 그러나 실제로 육아를 해 보니 이 역시 한계를 지닌다는 사실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먼저, 책 속의 내용은 그 자체로 유익하지만 ‘문자’라는 도구만을 사용해야 하기에 의미 전달에 어려움과 한계를 가지고 있어요. 상황에 따라 글쓴이의 의도가 잘못 전달될 수 있습니다. 작가가 의도한 바와 독자가 받아들이는 상황이 연결되지 못하는 상황이며, 결과적으로 잘못된 해석을 낳게 되죠.

물론 작가는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논리적이고 명쾌한 글을 써야 함은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만약 “내가 이런 의미로 적어 놓았는데, 잘못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의 잘못이다.”라고 말하는 작가가 있다면, 사람들은 그분의 책을 읽지 않게 되겠죠. 작가에게는 이와 같이 분명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가의 책임을 넘어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작가는 모든 독자의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우며, 직접 경험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일부는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에 의존해 쓰게 되죠. 이런 불가피함 속에서 생긴 한계는, 글의 의미가 독자에게 왜곡되어 전달될 여지를 남깁니다. 


때문에 가령 ‘나는 이렇게 아이를 키웠다’라는 주제의 책을 내 아이에게 적용하려 하더라도, 반드시 같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책에서 소개해준 방법대로 교육해도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자책할 수도 있죠. 이것은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라요. 제가 왜 이렇게 주장하는지 설명하기 위한 저의 사례는, 여러분의 이해를 도울 것 같습니다.

그날은 유럽여행의 마지막 날이었어요.

여행자들이 늘 그렇듯, 저와 친구들은 마지막 날의 아쉬움을 위로할 무언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처음 온 유럽여행이었고 다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지만, 내일은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시내에 있는 최고급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과연, 여행책자에서 추천할만한 식당이었어요. 입구에 들어서자 시선을 사로잡는 멋진 샹들리에가 눈에 띄었고 예약된 자리에는 반짝이는 식기들, 그리고 용도를 다 알 수 없는 포크와 나이프는, 초보 여행자를 압도하기에 충분했죠. 역시 최고급 레스토랑입니다. 그러나 시각적 아름다움에 정신이 끌리는 것도 잠시, 해외여행에서 언제나 난관인 ‘주문’을 해야 했습니다.

물론 준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스테이크를 먹기로 했기에 ‘굽기’의 정도를 어떻게 할지 준비해 왔습니다. 저희가 고른 것은 ‘미디엄’이었어요. 비교적 붉은빛이 적고 소고기의 육질을 살리고자 한 나름 ‘합리적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뒤 조리되어 나온 스테이크를 보며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죠. 핏물이 줄줄 흐르는 소고기가 접시에 담겨 식탁 위에 올려졌습니다. 여행의 마지막 날을 최악의 기억으로 장식할 요리를 보자,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서로를 향해 눈빛으로 의견을 교환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종업원에게 스테이크를 좀 더 구워줄 것을 요청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어요.

고기는 다시 구워졌고 원하던 것보단 ‘다소 질긴 스테이크’가 되었지만, 최소한 ‘피가 보이는 날고기’를 먹는 일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의 ‘합리적 결정’은 왜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연결되었을까요?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을까요?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지는 못했지만 ‘미디엄’이라는 단어는 정확하게 전달했음에 의심의 여지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여행객들의 초보적 실수 즉, ‘단어나 문장’이 상황에 따라 ‘의미’가 차이 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였던 것이죠. 단어가 같으면 뜻이 완벽하게 통할 것이라는 착각. 유럽인의 ‘미디엄’과 한국인의 ‘미디엄’은 단어만 같을 뿐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했죠.

이런 이유에서 저는 책을 ‘날것의 정보’라 부릅니다. 아직 나의 상황에 적용되기 전의 지식. 나에게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는 이 재료는, 나에게 맞게 조리돼야 하죠.

아무리 좋은 육질의 소고기라도 가공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습니다. 피가 보이게 하던, 바짝 구워 딱딱해지던 ‘날것의 고기’를 조리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있는 그대로 먹으면 탈이 납니다. 피가 묻어나든 다소 딱딱하든, 나에게 맞게 요리돼야 하죠.

따라서, 육아를 생각할 때 ‘책 몇 권으로 끝날 일’이라는 생각은 버리시길 바랍니다. 책 몇 권으로 육아가 잘 되었으면, 못하는 사람이 없었겠죠. 앞으로 여러분이 접하게 될 ‘육아책’에서 말하는 내용 모두가 완벽하게 적용되지 않을 겁니다.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탈이 나요. 나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비판적 시선으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책대로만 되면 그게 이상한 일일지 몰라요. 그러니, 책대로 못 키웠다고 자책하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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