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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 Soup May 19. 2021

작은 빵집 행복

후쿠오카 빵집 이야기

 일본과 우리나라의 빵집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파리바게트, 뚜레쥬르 등 프랜차이즈 빵집을 어느 지역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일본에서는 프랜차이즈를 찾기 힘든 대신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빵집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일본 여행에서 로컬 빵집 투어가 빠지면 매우 섭섭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기자기한 빵집에 들려 그곳만의 특별한 분위기를 느껴 보고, 단골손님들이 꼭 사가는 시그니처 빵(이왕이면 갓 구운 것으로)을 맛보는 것은 정말 즐겁다. 평소에도 동네 빵집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나는 후쿠오카 여행에서도 두 군데의 빵집을 들렀다.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하코자키(箱崎) 역 근처에 위치한 나가타빵(ナガタパン). 딱 봐도 오래되어 보이는 목조 건물은 70년도 전에 지어진 민가를 개조한 것이라고 한다. 멀리서 봐도 알아볼 정도의 커다란 가타카나로 가게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갓 구운 빵 냄새가 진동을 했다. 넓은 진열대 위에 꽤나 다양한 종류의 빵들이 올라가 있었다. 빵 옆의 쇼케이스에는 여러 가지 샌드위치가, 구석의 작은 냉장고에는 일본 온천에서 자주 보는 병 우유들이 들어 있었다.

 아침식사 대용의 든든한 빵을 찾던 나는 옥수수가 가득 들어간 콘빵(コンパン)을 골랐고, 작은 냉장고에서 커피우유를 꺼내 카운터에 가져갔다.


 계산을 마치고 계단을 올라갔다. 이 빵집에 아침부터 짬을 내어서 온 이유 중 하나는 자기가 산 빵을 2층의 공간에서 먹고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역시 나무로 된 테이블과 의자가 여럿 놓인, 안락한 느낌의 공간이 펼쳐졌다. 넓은 창으로는 햇살이 가득 들어오고 있었다.

 오전 열 시 즈음인데도 이미 사람들이 많았다. 담소를 나누는 할머니들, 혼자 노트북을 하는 젊은 직장인 여성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각자의 빵을 하나씩 테이블 위에 올려둔 채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언제나 창가석을 선호하는 나는 어김없이 창가 맨 끝에 자리를 잡았다.


빵을 다 먹고 나서야 사진을 찍었다

 넓은 창문 밖으로 가득 찬 녹음이 반짝거렸다. 콘빵과 커피우유, 아무 생각이나 적어 내려갈 노트와 볼펜을 꺼내고 자리에 앉았다. 먼저 콘빵을 한 입 먹었다. 아직 빵은 따뜻했고, 고소한 마요네즈와 달콤한 옥수수콘의 조화가 환상적이었다. 갑자기 행복이 밀려오는 듯한 맛이었다. 유리병에 든 커피우유를 딸 때는 ‘뻥’하는 소리가 났다. 종이팩이 아닌 투명한 병에 담겨서인지 우유가 더 시원하게 느껴졌다.


 사실 평소에 이렇게 동네 빵집에서 아침 시간을 보낸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른 시간에 나와 주민들 사이에 섞여 빵을 먹는 행위는 마치 내가 이 여행지에 사는 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처럼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그다음 날 들른 곳은 롯폰마츠(六本松) 역 근처의 마츠빵(マツパン)이다. 빵집 벽의 아기자기한 그림과 작은 화분들이 귀여웠다. 입간판에는 손글씨로 최근에 새로 나온 빵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종업원 분들이 크고 밝은 목소리로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해주었다. 빵집 내부는 아담했지만, 빵의 종류는 여럿 있었고 특히 처음 보는 종류의 빵이 꽤 많았다.

 빵을 고르는 와중에도 동네 주민들이 계속해서 빵집에 들어왔다. 정말 말 그대로 이 곳은 ‘동네 빵집’ 그 자체인 듯했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벽에 걸린 선반 위에 나란히 진열되어 있는 수제 식빵을 집었다. 인기 메뉴인 것 같았지만 혼자 먹기에는 커 보여 나는 생전 처음 보는 말차 ‘브리오슈’라는 빵과 나름 익숙한 맛일 듯한 생크림빵을 골랐다.


 나가타빵처럼 마츠빵도 빵을 먹을 수 있는 2층 공간이 있어서, 계산을 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나가타빵과 달리 다다미가 깔린 넓은 좌식 공간이 펼쳐졌다. 역시 넓은 창문으로 햇살이 가득 들어왔다. 이번에는 애매한 오후 시간이라 그런지 나 혼자 뿐이었다. 식빵이 그려진 동화나, 제과 관련 서적들이 놓여 있어 마치 ‘여기는 빵집!’이라는 느낌의 발랄한 공간이었다.


왼쪽은 생크림빵, 오른쪽은 말차 브리오슈. 옆 카페에서 산 라떼.

 처음 먹어 보는 브리오슈는 굉장히 맛있었지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잼이나 크림은 들어있지 않았다. 약간 달콤하고 고소하고.. 페이스트리처럼 결이 살아있진 않지만, 카스테라처럼 폭신한 느낌도 아니었다. 하지만 ‘겉바속촉’류의 맛이었던 것 같다. 돌아와 검색해보니 고급 햄버거에 번으로 쓰인다고 하는데, 내가 먹은 브리오슈와 햄버거 번은 전혀 다른 느낌이라 잘 와 닿지 않는달까. 생크림 빵의 맛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말차 브리오슈의 충격이 너무 컸었나 보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놀이터 앞 벤치에는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녀 네 명이 나란히 앉아 빵을 먹고 음료수를 마시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래층에서는 손님들이 문을 열 때 나는 딸랑- 소리와 종업원들의 밝은 인사 소리가 들려왔다. ‘이 작은 빵집이, 빵과 함께 동네 사람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선물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여행자다. 하지만 이런 순간에는 이들의 일상 속에 들어와 있다고 느낀다. ‘이곳의 주민들이 사랑하는, 매일 아침과 주말 오후마다 들르는 빵집의 풍경 속에 내가 있다’는 경험은 참 특별하다. 모든 곳에서 살아볼 수는 없지만, 그렇게라도 잠시 한 순간 다른 곳에서 살아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직접 그들의 일상에 들어가 보는 것,

그것은 관광지를 가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 마츠빵에서의 일기는

제 유튜브에서 더 생생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xCkpb9sRq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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