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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 Soup Feb 06. 2022

바닐라 차이티 라떼

숨겨진 메뉴를 주문하는 즐거움

 단골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언제나 앉는 구석탱이 자리에 가방을 놓고, 겉옷을 벗고, 카운터로 간다. QR코드를 찍고, 메뉴판을 보지도 않은  주문을 한다. "바닐라 차이티 라떼 주세요, 아이스로요." 그렇게 말하고는 속으로 으쓱해한다.

 왜냐하면 바닐라 차이티 라떼는, 메뉴판에는 없는 나만의 '단골 메뉴'이기 때문이다.


 '...' 처음 맛본 , 아마   전의 겨울이다.

  즈음에도 나는 단골 카페에 들어가, 구석탱이에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무얼 마실지는 항상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후보는 그린티 라떼, 자몽티 등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winter season menu>라는 특별해 보이는 메뉴판이 있었다. 거기에는  가지 음료의 사진이 있었는데, 하나는 기억도 안 나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바닐라 차이티 라떼였다. 차이티는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지만, 시나몬 츄러스를 좋아하기 때문에 왜인지 취향일  같다는 예감에 주문을  봤다.


 바닐라 차이티 라떼는, 그야말로 시나몬 츄러스를 음료로 마신다는 느낌이었다! (지금도 마시고 있기 때문에 확언할  있다) 부드럽고 달콤한, 아주 약간 쌉싸름한 라떼에 밀크폼, 그리고  위에 츄러스에 뿌린 설탕처럼 올라가 있는 시나몬 가루. 처음 만난 순간 사랑에 빠져버렸다.


 하지만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 바로 ‘winter season menu’였다는 것이다. 2월이 지나 3월이 되자 특별 메뉴판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고, "바닐라 차이티 라떼 있나요"라고 해도 시즌 메뉴라고 해서 주문이 되지 않았다.

 .차.라. 때문에 겨울이 되기를 기다린다 하는 것은  과장이지만, 겨울이 기다려지는 이유라고는 자신 있게 말할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해가 지나 1월이 되었는데도, <winter season menu> 메뉴판은 등장하지 않았다. 맙소사! 그건  해만의 특별 메뉴였던 건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바닐라 차이티 라떼" 물어보아도, 알바생들은  메뉴가 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아쉬웠다. 내가  자주 와서 ... 판매율을 높였더라면,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는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다시 음료 유목민이 되는 것보다,  맛을 다시는  본다는 사실이 더욱 슬펐다.


 "혹시, 바닐라 차이티 라떼는... 없겠죠?"


 올해도 특별 메뉴판은 없었다. 이미 사라졌다는 걸 확인했는데도, 나도 모르게 또 물어본 것이다. 그런데 예상외의 전개가 펼쳐졌다. 없다는 말 대신, 최근 자주 본 (아는 척은 안 하지만) 알바생 언니는 포스기를 확인해보더니 매니저님(으로 추정되는 분)께 다가가 물어보는 듯했다.


"네, 되세요~"


 만세! ... 사라진  아니라, 혀졌을 뿐이었던 것이다! 시즌 메뉴에다가 찾는 사람이 없다 보니, 알바생들에게는 레시피 전수(?) 되지 않았지 싶다. 매니저님(으로 추정되는 )께서 직접 만들어 주신 바닐라. 차이티. 라떼. 맛은 황홀했다. 추운 겨울에만 맛볼  있는,  달콤함.  달콤함에 취해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나만 아는 시크릿 메뉴인 건가?'

 

  , '고독한 미식가' 같은 일본 드라마를 보면 자주 나오지 않는가. '항상 먹던 걸로(いつもの)'라는 4음절의 마법 주문으로 즐기는, 메뉴에 없는 메뉴 말이다. 나는 그런 장면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뭐랄까,  주문은 훈장 내지는 VVIP 카드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가게를 메뉴가 바뀔 정도로 오랫동안 다녔으며, 그만큼 좋아한다는  인증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물론 내가 아무리 단골 카페라 해도 ... '항상 마시는 걸로'라고 주문할 수는 없겠지만(그럴 분위기가 아니다). 어쨌든 이 카페를 다닌 지 오래된 사람만 주문할 수 있는, 스페셜 메뉴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그런 사건, 이라고 부르기 애매한 사건들이 일어난 , ... 주문할 때만 나도 모르게 의기양양해져 속으로 웃고 있다. 카페에    시간이 지났지만, ... 주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제멋대로인 달콤함이 사라진다면, 아마  아닌 누군가가 “바닐라 차이티 라떼 한 잔이요”라며 주문하는 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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