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내 기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내 Dec 28. 2020

'그럴 수도 있는' 문제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개발자로서 언젠가 인간이 AI에게 지배당할지도 모른다며 두려워하는 것은 아직은 시기상조 같다. 이미 기계가 처리하면 더 쉽고, 정확하고, 비용이 저렴한 몇몇 일들을 인공지능이 대신하고 있고 예술가들의 문체나 화풍을 정교하게 흉내 내 비슷한 그림들을 그리고 있다고는 하나 그것이 과연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고, 결국 인간은 인공지능이 주인인 세상에서 부차적인 역할만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는 극단적 상상을 불러일으킬만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점차 인간을 그럴싸하게 흉내 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에겐 아직 인간이 만들어준 정답지가 무한히 필요하다. 학습을 위해 인간보다 훨씬 많은 자료를 필요로 하고, 집단지성을 이루어 문제 해결보다 한 발 더 나아가거나 후대에 지식을 전수하는 등 인간처럼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발전하기에는 아직 멀었다. 인공지능의 인간 지배는 새롭고 진일보한 기술을 꿈꾸는 연구자들의 노력 끝에 언젠가, 아주 먼 미래에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정도의 아주 낮은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확실히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들이 배우고 평가하고, 또다시 익혀나가는 방식은 생활 패턴의 변화나 대량 실직처럼 겉으로 보이는 면뿐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 아주 깊은 곳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 때도 있다.


AI는 세상엔 어쩌면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건 배우지 않는다. 확률이 높지는 않더라도 세상 어느 곳에선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을 Threshold, 그러니까 일종의 확률적 문턱을 넘지 못하면 '거짓(0)'으로 처리하고 없는 일로 만들어버린다. 그들은 세상을 참(1)과 거짓(0)으로 무한히 구분해 가며 현실을 습득한다. 쉽게 말해 어쩌면 세상에 존재할 아주 개처럼 생긴 고양이의 사진을 보고 '고양이일 확률이 높지 않으니 고양이가 아니다'라고 판단한 뒤 그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해 학습하거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인공지능에게 혼돈을 줄 수 있는 이런 예외항은 미리 제거해 버리고 학습을 시작하는 식이다.


인공지능의 이 같은 학습 방식을 인간들이 꼭, 역으로 습득한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아침마다 마주하는 뉴스나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우리는 인간임에도 '그럴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음'을 잊은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도 세상엔 옳거나 그른 것들만 존재할뿐, 다른 건 없다고 말하는 듯한 사람들을 종종 마주한다. 마치 가장 합리적인 추론 끝에 최선의 결론을 얻은 양 큰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겐 어쩌면 그럴 수도 있는 삶을 잘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더 무서운 건 이런 상황을 마주친 소수의 그럴 수도 있는 일들은 대부분 조용히 침묵을 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 것처럼. 옳은 것과 그른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그렇게 다를 수도 있는 것들을 잃어버린 세상을 바라보는 자들은 한층 강화된 편견을 가지고 삶을 학습한다. 그럴 때면 나는 이런 사고방식이 인공지능이 세상을 나누는 것과 도대체 무어가 다른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


물론 세상엔 너무나 분명하게 그른 것도 있다. 법을 어긴 사람이나 기준에 맞지 않는 제품의 흠결 같은 경우가 그렇고, 사회가 대부분 동의한 가치관을 거스르는 행동 또한 그렇다. 이런 것들은 옳은 것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인공지능 역시 쉬이 0과 1을 나누고, 학습한다.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지도 않다. 실제로 제품의 결함을 찾는 일은 이미 많은 부분 인공지능이 대신하고 있고, 판사와 같은 법관들도 빠른 시일 내에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확률이 높은 직업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세상엔 옳고 그름 사이의 골이 그다지 극명하지 않은 일도 많다. 어떤 일은 통계를 내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제각각이고, 폭이 좁은 정규분포 곡선처럼 어림할 수 있는 평균이 존재하는 것 같아 보이는 일에도 예외는 있다. 평균을 벗어났다고 그 예외항들을 모두 틀렸다거나 없는 일로 만들 수는 없다. 그럴 수도 있지. 영어로하면 'That happens.'에 가깝다. 어떤 추론이나 인과 관계에서도 벗어나 생긴 일. 세상엔 '그럴 수도 있는 문제'들이 꽤 많다.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던 계기에 대해서 한참 적었다가 지웠다가 했어요.

제가 바르게 생각하고 있는지 확신은 없는데, 고민을 끝내고 글을 올리려면 너무 늦어질 것 같아 생각이라도 정리하여 게시합니다.ㅎㅎ

글이 너무 짧아져 부끄럽네요. 언젠가 지웠던 내용을 수정하여 추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명해지기 위한 경쟁'에 참가하려 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