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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Apr 03. 2024

아호, 나의 아들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



영화 [아호, 나의 아들〕에는 자식을 대하는 태도가 극명하게 다른 부모가 나온다. 운전학원 강사 일을 하는 아버지는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 둘째 아들보다 똑똑한 큰아들(의대 재수생)을 편애하는 사람이고 미용사인 엄마는 지나치리만큼 침착하고 감정 표현이 점잖은 사람이다. 자식에게 관심이 없는 게 아닐까 오해하기 딱 좋다. 아버지는 인생을 도로 위에서 규칙을 지키며 운전하는 것처럼 살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어머니는 어떤 어려움에도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현실만을 묵묵히 살아내는 타입이다. 한마디로 두 사람은 딱 한 가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만 빼놓고 성격이나 삶의 태도 등 거의 모든 게 다른 사람들이다.


 집에는 부모만큼이나 극명하게 다른 형제도 있다. 큰아들로 말할 것 같으면 친절함을 남들에게 다 줘버려서 자기 몫은 못 챙긴 듯 보인다고 할 정도로 착한 모범생이고 둘째 아들은 그야말로 좌충우돌 사고뭉치다. 그러다가 결국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의 손을 잘라버리는 대형 사고를 치고 소년원에 간다. 둘째가 사고를 쳐도 일상은 그럭저럭 굴러가는 듯했는데 아버지의 자랑이던 모범생 큰아들의 난데없는 자살로 집안은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들의 죽음의 이유를 찾아야만 하는 부모,  아들의 친구에게 전해 받은 문자 메시지는 부모의 가슴을 와르르 무너지게 했다.

“세상에서 제일 공평한 건 태양이야. 위도가 어떻든 지구상 어디든 한 해 동안 똑같은 총량의 낮과 밤이 있잖아. 며칠 전 동물원에 갔지. 햇살이 내리쬐는데 너무 강해서 동물들이 못 견디더라. 다들 숨을 그늘을 찾았지. 말로 설명 못 할 묘한 느낌이 들었어. 그러곤 그 동물들처럼 나도 그늘에 숨고 싶었어.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그늘에 숨을 수 있는 건 동물들뿐이 아니더라. 사람들은 다들 그늘진 구석을 찾을 수 있었지만 난 아니었어. 내겐 햇빛만 있었지 24시간 내내 방해 없이 밝고 따듯하게 내리쬐는 햇볕. “


 


아버지는 아들에게 서슴없이 기대를 표출하고 성공을 위해서라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섬세함은 부족해 아들의 마음을 들여보지 못했던 것이다. 큰아들이 아버지가 내리쬐는 빛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어 절망하고 자살을 선택했다면 이와 반대로 둘째 아들은 빛에 대한 갈망으로 방황한 것이다.







나는 한때 태어나 가장 크게 실수를 저지른 것이 자식을 낳은 일이라 생각했다. 부모가 되고 보니 내가 얼마나 모자라고 서툰 존재인지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부모가 되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도 자식을 낳아 기르는 건 차원이 달랐다. 예행연습도 없이 곧바로 실전에 투입되었다는 게 어이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무수히 많은 실수를 했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간 적도 있다. 그러면서 자식을 낳아 기르는 건 인간이 받은 가장 어려운 숙제라는 걸 알았다. 내 속에서 나온 자식이라도 나는 그 아이를 도무지 모르겠고 아이의 성향에 딱 맞춘 것 같은 육아를 하는 것이 이상적인 부모의 태도라면 나는 완전히 망한 것이었다.




필립 로스의 소설 울분에는 딱 나 같은 부모 (자식이 성장하고 키가 크고 부모보다 찬란하게 빛난다는 것, 그때는 아이를 거두어 줄 수 없으며 아이를 세상에 내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바람에 겁에 질려 버린 아버지)가 등장하는데 아래의 대목을 읽으며 어쩌면 딱 내 이야기를 썼네! 하며 큰 소리로 웃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아버지는 낮이나 밤이나 내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려 했다. 어디 갔었느냐 왜 집에 없었던 거냐 네가 나가서 어디를 싸돌아 다닐지 내가 어떻게 안단 말이냐 너는 창창한 미래를 앞에 둔 청년이야 네가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곳에 가지 않는다는 걸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 아버지가 생각하는 귀가 시간보다 이십 분만 늦어도 열쇠로 문을 열 수가 없어 두드려야만 했다. 아버지는 미쳤다. 소중한 외아들이 성인이 되어가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삶의 위험에 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걱정 때문에 미쳐버렸다.


겁에 질린 아버지는 심지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를 찾으러 사방을 돌아다녔다. “


”왜요? “


”왜냐하면 너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면... 인생이 그래서 그래... 발을 아주 조금만 잘못 디뎌도 비극적인 결과가 생길 수 있으니까. “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어떤 면은 너무 섬세하게 어떤 면은 너무 둔하게 만들어 버리는 초 예민 상태다. 그 예민함은 오히려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에만 매몰되어 자식의 마음이나 상황을 돌아보지 못하는 그야말로 눈을 뜨고도 아무것도 못 보게 된다. 다시 말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 진짜 사랑은 빠져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시 나를 가장 괴롭히던 감정은 모든 일이 나의 신념대로 흘러가야 삶이 안전할 것이라는 강박이었다, 나조차 자신을 지키기 버거웠으면서 아이에게 나만 믿어 엄마가 널 지켜줄게.라고 믿음직스럽게 말하는 부모가 되려고 안간힘을 썼다.


자식에게는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정도의 사랑과 관심을 주면 된다는 말이 있다. 말이 쉽지, 실천하려면 할수록 어렵다. 부모는 자식의 눈을 찌르는 강렬한 빛이면 안 되고 편안한 조도의 적당한 빛이어야 한다. 그늘진 곳 없이 구석구석 골고루 비추면서도 자식이 쉴만한 그늘이 필요할 때를 대비해 그늘막까지 만들어야 한다니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난도 높은 일인가.



이 나이까지도 좋은 부모가 되는 일이 어렵기만 한 나는 그저 마음속으로 염원한다. 무엇보다 아이가 자신을 위해 살기를. 살다 보면 적지 않은 확률로 인생을 희생하고 있는 순간이 오는데 그걸 잘 알아차리길 바란다. 한국의 좁은 땅덩어리에서 아우성치며 살더라도 시간이 날 때마다 먼 지평선을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곳에서 오직 자신의 힘으로 인생 전체를 디자인하는 명상에 잠겼으면 싶다. 온갖 불리한 조건을 껴안고 있어도 그럴수록 여유로운 미소로 세상과 자신의 처지를 긍정할 수 있기를. 그리고 충분히 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대만 영화 [아호, 나의 아들]의 원제는 양광 보조(陽照)다. ‘태양은 두루 비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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