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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인생, 그리고 실패

각별한 실패 | 을유문화사

by 김설

이 책은 저자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아는 것으로 이미 반은 읽은 거나 다름없다.
클라로는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는 작가이자 번역가다. 그는 서점원, 출판 교정자, 시나리오 작가, 팝 칼럼니스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책과 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쌓아온 사람이다. 책 만드는 과정, 즉 출판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에 이 책을 쓸만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글쓰기에 관한 책을 쓸만한 작가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역설적으로 보자면 뻔한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



영어권 문학을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번역가로 매우 유명하고 토머스 핀천, 살만 루슈디, 윌리엄 배로스, 휴버트 셀비 주니어 등 내로라하는 현대 영미 문학의 거장들의 작품을 프랑스 독자들에게 소개해 왔다고 한다. 저자 소개에 그렇게 쓰여있어서 옮기는 것이지 위에 나열된 사람들이 누군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번역이라는 작업 자체가 원문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무수한 고민과 실패를 거듭하는 과정이 있을 테고 그런 경험이 이 책 『각별한 실패』를 쓰는 데 큰 영향을 주었을 거라고 본다.


이 책은 글쓰기를 하면서 겪게 되는 좌절과 고난,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순간들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때는 작가로서 고통을 겪지만 이런 경험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실패가 삶의 필연적인 부분이면서, 더 나은 길로 나아가기 위한 각별한 기회이자 배움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좀 뻔하다 싶은 내용이 이어지다가 프란츠 카프카, 장 콕토, 페르난두 페소아 같은 대 작가들도 작업 과정에서 수많은 좌절과 어려움을 겪는 내용이 나올 때, 그나마 좀 흥미로웠다.

카프카는 글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고, 페소아는 수많은 필명 뒤에 숨어 살았다고 한다. 그들의 '실패'가 오히려 그들을 더욱 위대하게 만들었다고 말하면서 글쓰기를 넘어 인생 전반에서 우리가 실패를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말해 준다. 단순히 '힘내라!'가 아니라, '이 사람들도 이랬으니 괜찮다'는 식의 진정성 있는 위로와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할까. 성공만이 가치 있다는 현대 사회의 강박관념에 잔잔하면서도 깊이 있는 성찰을 유도한다.


만약 지금 어떤 일에 좌절하거나, 글쓰기나 창작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또는 '실패'라는 단어 앞에서 자꾸 움츠러드는 스스로를 발견한다면 이 책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펼친 걸 후회했다. 재미없어서는 아니고 비슷한 류의 책에 좀 지쳤다고 느꼈는데 습관처럼 글쓰기라는 단어에 반응해 데려왔구나 싶었다. 글쓰기에 관한 책은 읽지 말아야지 다시 한번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나마 다행은 클라로 작가 특유의 솔직하고 유머러스한 문체가 어려운 주제를 지루하지 않고 유쾌하게 풀어내서 끝까지는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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