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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정 Jan 07. 2020

2-9. 떼 끼에로, 세뇨르!

포스여행(포르투갈-스페인)

































009. 떼 끼에로, 세뇨르!
(¡Te quiero, señor! )


















세비야에서 지내는 3박 동안
렌페 기차를 타고서
코르도바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났다.















이슬람과 가톨릭의 조화가 어우러진
메스키타를 감상하면서
묘한 분위기에 압도되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신나게 먹고
주말 마켓까지  좋게 즐기면서



로마교의 애틋한 야경까지 감상하며
코르도바에서의 하루를 알차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오늘 일정 완벽한데?"
"응 돌아가는 기차 시간도 적당해."



그러나 우리가 누구인가.
코르도바. 참으로 개구진 이 도시는 결코
우리를 스무쓰하게 보내려 하지 않았다.










Muy(매우, 무척)를 꽤나 강조한
버스 기사님의 얘기(이것은 경고였다...)에도
넉넉하게  시간 정도 여유가 있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해 버스에 탑승했고,



그렇게 우리 자매는
코르도바의 넓디넓은 품에
자진해서 안겼다.








"...와 이거 생각보다 너무 돌아가는데?"
"언니, 점점 시내랑 멀어지고 있어..."





뭔가 잘못됐음을 감지한 순간에도
버스 바퀴는 계속 굴러가고 있었고
당장 내리자니 이미 암흑으로 깔린
정처 모를 곳에 발을 디딜 자신이 없었다.



버스에서 20분가량 시간이 지나자
더 이상 타는 사람 없이 버스 승객들은
하나 둘 내리기 시작했고

결국 버스에는 기사님과
동공 지진의 강도가 점차 세지는
한국인 여자 두 명만 남게 됐다.



"이젠 돌아가겠지..."
"지금쯤이면 돌아가야 하는데..."



여유 넘쳤던 시간은 30분 넘게 버스를 타고 달려
기차 출발까지 20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버스 기사님  마디에 우리는 확신했다.

망했다.











다급함을 눈치챈 기사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빈 버스를 몰고 종점을 지나
비상등을 켜고 2분 정도를 더 달려
택시 승강장 앞에서 우릴 내려주셨다.















경고를 무시한 채 탑승했던 무지한 두 여인네를
매정하게 내치지 않고 택시 승강장 앞에 내려주신
버스 기사님이 (급한 와중에도) 너무나 감사했다.















그러나 감동도 잠시 
택시가 단 한 대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
고요하고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연신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렌페 놓치면 어떡하지?"
"그 기차가 오늘 세비야 가는 막차인데..."





똥줄이 탄다는 느낌이 이랬을까?
머릿속으로 있지도 않은 옵션들을 열심히 굴리고 있던 그때
극적으로 승강장에 택시 한 대가 들어왔다.













기차 티켓 출발 시간을 보여주며
영어와 스페인어 섞어가며 연신 외쳐대는
절박한 우리의 모습 상관없이
택시 기사님은 휘파람을 불며 주유를 하셨고
그 순간 우리의 희망과 이성의 끈은 끊어졌다.



















그리고 그 끈은 다시 붙었다.




"...?!"



우리의 (사랑스러운) 기사님께서는
출발하자마자 속력을 내기 시작했고
자매는 비로소 그 여유롭던 휘파람의
깊은 뜻을 이해했다.





30분 넘게 버스로 돌아 돌던 길은
고속도로를 타서 단 8분 만에 돌파해 시내로 진입했고
렌페역에 5분의 여유까지 남기며 기적적으로 도착했다.








지금 이 순간
어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으랴.













나락에서 가까스로 건져진 자매는
멋쟁이 레이서님께 격정적인 사랑 고백과
감사 인사를 연신 퍼붓고서 역으로 내달렸다.





그렇게 어리바리 자매는
질척이던 코르도바의 손을 간신히 뿌리치고
무사히 세비야로 복귀할 수 있었다.

















.


.


.











스페인 남부의 마지막 여행지였던
말라가를 떠나 바르셀로나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이동을 하는 날이었다.















우리를 보내기 싫었는지
말라가 녀석도 질척이기 시작했다.



역무원에게 언제쯤 출발할 수 있을지 묻자
열차에 이상이 있어 언제 출발할지는
확신할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앉아있던 여행객들이 결국 결심한 듯
하나둘씩 내리기 시작했고,
우리도 비행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다시 짐을 끌었다.




어김없이 찾아간 택시 승강장은
역시나 텅텅 비어있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출근 시간이 다가오자
도로에는 차들이 빽빽했다.




그렇게 20분 넘게 택시가 잡히지 않자
그냥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열차에 앉아서
기다릴 걸 그랬다는 후회와 함께
의미 없는 자괴감이 몰려왔다.


"그래, 코르도바에서 기차를 탈 수 있었던 건
우리가 비행기를 놓칠 운명이었기 때문이야..."








모든 것을 내려놓은 그때,

열심히 팔을 휘적대는 동양인 여자를 보고

반대편 차선에서 유턴까지 해가며 와준
택시가 우리 앞에 섰다.






이번에도 스페인 기사님은
우릴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 사랑 고백을 했다.













수속 마감 3분 전
말라가 공항에 가까스로 도착했고
3일 치 멘탈을 그날 오전에 쏟아 털어냈다.





"언니... 우린 뭐가 이렇게 매번 힘들까?"

















그리고 역시나(?)



이 여행에서의 사건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었다.











포스여행 9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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