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혁신을 위한 트렌드 제대로 읽기
매년 말이 되면 서점가에는 내년도 트렌드를 예측하는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리고 이 책들은 매번 1월의 베스트셀러에 선정되곤 하죠. 트렌드를 예측하는 책들은 사람들에게 왜 인기가 많은 것일까요? 다양한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두 가지로 추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트렌드를 이야기하는 것은 내가 모르던 새로운 것들에 대해 다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대부분 흥미롭죠. 인터넷과 미디어의 발달로 개인은 광대한 정보에 접근 가능한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극히 자신들의 취향에 국한되어 있고, 규범적이기까지도 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개인화 알고리즘의 영향도 일부 있겠습니다만, 사람들의 정보 수집 능력의 한계도 한몫을 하고 있죠.
두 번째로, 사람들은 잠재적으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 이유는 아마도 다른 어떤 생물들보다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좋기 때문일 텐데요. 이는 자연스럽게 환경의 변화에 대한 관심 혹은 두려움으로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거창하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사회화의 과정에서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생존의 방법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들이 속한 사회의 변화는 사람들에게 큰 위협 요소로 느껴지게 되고 이를 미리 파악하고 대비하려고 하는 본능이 작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자연인인 사람뿐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서 이뤄진 기업이나 국가 등에서 똑같이 적용됩니다.
트렌드에 대한 관심은 일반인들보다 기업들의 관심이 더 높을 수밖에 없는데요. 기업은 지속적으로 환경변화에 주목하고 이에 대응 혹은 적응하면서 성장을 유지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트렌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하고 수많은 돈을 들여서 트렌드 리포트를 사기도 합니다. 이처럼 트렌드에 대한 관심은 개인이나 기업이 생존을 이어 나가거나 성장하는데 중요한 일입니다. 우스꽝스러운 비교입니다만, 트렌드에 대한 이러한 관심과 행동은 마치 사람들이 매년 새해 운세를 점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용한 점쟁이에게 한해를 점쳐보는 것이죠. 올해는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을 조심해야 하나처럼 말이죠.
자 그럼 이 시점에서 트렌드를 제대로 활용하는 법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눠 보시죠.
여러분들은 트렌드를 무엇이라고 정의하시나요? '요즘 들어 사람들이 많이 보유한 물건, 스타일, 행태의 변화' 정도로 정의하실 것 같은데요. 이러한 정의하에 사람들은 본인들의 보유물이나 행태를 트렌드에 맞춰 조정하는 특성을 보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것은 생존을 위한 적응 행위 정도로 이해해 볼 수 있겠네요. 소수보다는 다수에 속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느끼기 때문이죠. 트렌드에 대해 이처럼 나타나는 사람들의 행태가 아마도 일반적인 트렌드의 활용법일 것입니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방법이 되겠죠.
트렌드를 활용하는 두 번째 방법은 개인보다는 기업이나 기관 같은 곳에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앞서 언급한 트렌드 예측서 들에서 트렌드를 예측하는 관점이나 방법들은 각양각색인데요. 크게는 기업들과 관련되어 있는 기관, 혹은 학계의 움직임을 보고 그들의 계획에 따라 새해의 트렌드를 예측하는 부류와 고객들의 행태 변화를 보고 앞으로의 트렌드를 예측하는 부류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이는 기업의 생존 혹은 성장을 위해 '기업과 관련된 이해 관계자들은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 그리고 '고객들은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하죠. 개인에게 적용한다면 좀 더 포괄적으로 트렌드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앞서 말한 트렌드 활용법보다는 적극적이긴 합니다만 남들이 먼저 하고 있거나 만들어 놓은 트렌드를 쫓아간다는 측면에서 보면 여전히 수동적인 활용법으로 보입니다.
제가 제안하는 트렌드 활용법은 "흐름을 전망하는 트렌드 읽기"입니다. 일반적으로 트렌드를 읽을 때 집중하는 것은 앞서 언급했던 재미있는 사실들 이거나 다른 사람 혹은 이해관계자들의 움직임 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에만 집중한다면 누군가의 리드를 언제나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사실이나 증거를 넘어서 그 팩트 혹은 팩트들의 집합과 흐름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개인과 기업에게 성장의 방향성을 깨닫도록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성장의 방향이 확실히 정해지고 나면 환경 변화에 대한 두려움도 줄어들고 선택과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트렌드라는 정보를 근거로 새로운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 트렌드 읽기의 핵심입니다. 흐름을 읽고 전망할 수 있으면 모든 트렌드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아도 되고 개인이나 기업의 방향성 있는 움직임은 그 자체로 트렌드를 만들고 선도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과 기업들이 이를 쫓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트렌드를 제대로 읽을 때 한 가지 주의해야 하는 점은 <그림 1>에 나와 있는 것처럼 트렌드의 수명과 범위(진폭)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트렌드의 커버리지가 좁고 수명 또한 길지 않은 트렌드 현상을 "트렌드 시그널"이라고 정의하고 이러한 시그널들이 모여 일정 규모 이상의 커버리지와 흐름의 갖게 된 것을 "트렌드 웨이브"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요. 개인 단위의 관점에서는 트렌드 시그널 자체로도 의미가 있습니다만,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하는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보다 장기적인 흐름을 갖는 트렌드 웨이브를 파악하고 이에 맞춰 기업 성장의 방향을 수립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같은 관점에서 혁신이나 디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에게 좀 더 큰 가치를 오랫동안 전달하고 지속적인 수익창출 즉, 성장을 목표로 한다면 지금 현재 눈에 보이는 현상인 트렌드 시그널이 아닌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의 방향성을 나타내는 트렌드 웨이브를 읽고 이를 바탕으로 디자인, 개발 등의 혁신 활동을 해야 합니다. 트렌드 시그널에 근거해서 디자인하거나 혁신해서는 안됩니다. 언제나 강조합니다만, 눈에 보이는 현상은 의미를 표현하는 수단일 뿐 의미 자체가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 고객 니즈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는 앞으로 사람들의 행태 변화, 트렌드의 방향성을 깨닫게 해 줍니다.
++ 그동안 나왔던 수많은 트렌드 전망들의 적중률을 검증해보면 어떨까요?
+++ 전시회는 트렌드를 읽기 좋은 곳입니다만, 진정한 트렌드 리더들은 전시회에 참가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