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은 디자인, 최소한의 디자인
".... 더 나아진 서비스라는 건 알겠는데... 뭔가 내가 놀랄만한 UX/UI가 없는 것 같은데...."
직원용 인트라넷 CX를 개선하는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리뷰하는 과정에서 클라이언트의 반응인데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흔히 제품 디자인과 서비스 디자인의 차이를 설명할 때, 제품 디자인의 유형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일이고 서비스 디자인은 무형의 경험을 만들어 내는 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분법적인 정의는 현실에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품이 관여하지 않는 서비스도 없고 또 반대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죠. 실제로 업계에서는 서비스 기획과 상품 기획을 구분하지 않고 상품 기획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결국 상품과 서비스가 적절하게 그리고 조화롭게 연결되어 고객에게 최적의 경험과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겠죠.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적절하게 그리고 조화롭게 연결되지 못한 서비스가 많은 것 같습니다. 서비스 디자인의 결과물이라고 하는데 지나치게 많은 조형적, 제품적 요소의 특성이 강조되고, 이러한 강조점이 오히려 원래 서비스 경험의 좋은 부분을 삭제시키기도 합니다.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일까요?
제가 보기엔 디자인 개념에 대한 오해와 서비스 디자인 성과 지표의 부재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먼저, 사람들은 생각하고, 구조화하고, 표현하는 디자인의 논리적 프로세스 중에서 마지막 단계인 표현행위와 그 결과물을 디자인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디자인의 결과물이라면 가시적으로 확인 가능한 형태의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것으로 기대하게 됩니다. 따라서 디자이너가 무형의 것을 디자인해 냈을 때는 뭔가 부족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생겨나게 됩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디자이너들은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각적 조형물 설치와 과장되고 주변과 조화를 못 이루는 제품적 디자인 요소를 그들의 결과물에 포함시키게 되는 것이죠. 두 번째는 디자인 성과 지표의 부재인데요. 보통의 경우 디자인 작업의 클라이언트들은 그들의 업적과 성과를 가시적으로 확인하고 어필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무형의 서비스 디자인은 이들의 이러한 니즈를 만족시키기에 부족하죠. 그래서 자꾸 뭔가 제품적인, 시각적인 디자인 요소가 결과물에 반영되기 바라고, 이를 넘어서 자신들의 업적을 어필하기 좋은 형태의 와우(Wow)적 과장을 요구하곤 하는 것이죠. 사실 이러한 와우적 요인들은 실제 사용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기대보다 높지 않고, 그 수명 또한 짧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서비스 디자이너들은 디자인된 서비스의 성과를 일반인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요. 좋은 서비스냐 그렇지 않느냐의 판단은 서비스를 통한 가치 제공이 얼마나 효과적인가를 통해서 해야 합니다. 다른 서비스와 얼마나 시각적으로 차별적이냐, 깜짝 놀랄만한 제품적, 조형적 요소가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으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서비스 디자인의 효과를 측정하고 어필할 수 있는 디자인적 지표가 만들어진다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무형의 디자인 효과 측정은 단기간에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경험한 새로운 서비스가 그들이 이전까지 선택하고 이용하던 문제 해결 방식과 교체되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죠. 이는 서비스 디자인의 목적이 사람들이 이전까지 이용하던 특정 문제의 해결 방식을 디자이너가 제안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완전히 교체하고 이것이 그들의 의식과 행동에 자리 잡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론적으로 서비스 디자이너는 당장 클라이언트의 성과 욕구를 따르지 말고 자신들의 디자인이 얼마나 오랫동안 효과를 발휘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이에 따라 최소한의 조형성으로 고객에게 지속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디자인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보이는 디자인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조형에 대한 기대를 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디자인의 효과랑은 거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최소한의 조형성, 제품성으로 사람들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 좀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서비스 디자인에서 있어서의 조형적 요인들은 그것이 디자인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고객들에게 넛지(nudge)의 역할을 할 정도의 최소한이 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진#1> 인파에 의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 디자인의 일환으로 강남의 한 뒷길에 설치된 혼잡도 측정 및 경고 시설물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이러한 시설물 없이 사람들의 밀집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좀 더 주변과의 조화를 생각해서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사진#2>한 버스 정류장 바닥에 버스 노선 번호가 표시된 모습입니다. 줄 서기를 유도하기 위한 표시인 것 같은데요. 이 방법이 효과적일까요? 길바닥에 이러한 표시 없이 사람들을 질서 있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 사람들의 문제 해결 프로세스는 쉽게 바뀌지 않아요. 행동 변화로 인한 이득이 크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새로운 방식을 채택하고, 이러한 이득의 합이 크다고 느낄 때 서비스에 대한 만족을 느낍니다.
++ 와우(Wow)는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기에 충분한 중요한 요인이지만, 이것이 사람들의 서비스 지속적 이용과 만족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 가끔은 빼는 것이 더하는 것보다 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