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호'를 사랑한 기사님

by 박선선

보통의 아침엔 지하철을 탄다. 하지만 오늘은 택시를 불렀다. 그만큼 출근길의 몸이 무거웠다. 택시에 몸을 싣고 5분쯤 달렸을까. 기사님이 조심스레 침묵을 깼다.


"아가씨, 시원한 음악 틀어줄까?"


시답잖은 수다를 떨자는 게 아니라 다행이었다. 모르는 이와 수다를 떨기엔 몸만큼 마음도 무거웠으니까. 그런데 음악을 틀어준다니, 나는 좋다고 했고 기사님은 볼륨을 높였다. '캐럴인가?' 싶은 멜로디가 흘러나왔는데 곧이어 '트로트인가?' 싶은 음성이 들려왔다. 한여름에 캐럴이라니. 그래서 시원한 음악이라고 칭하신 걸까? 요새 유행인 트로트와 캐럴의 컬래버레이션 같은 건가. 도대체 이 음악의 정체는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음악 좋지?"


음악의 정체성을 의심하고 있던 나는 기사님의 질문에 그저 '네에...'라고 작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 대답이 반가웠는지 기사님은 조금 들뜬 듯했다. 이제 기사님의 가수 배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기사님께 들은 바로는) 가수 배호의 업적을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다. 배호는 대한민국 최초의 캐럴을 불렀다. 이후 가수들은 배호를 따라 캐럴 앨범을 냈다. 남진과 나훈아가 배호를 따라 했고, 지금의 아이유 역시 배호를 따라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아이유의 그 유명한 삼단 고음 역시 배호를 따라한 것! 배호는 23살에 가수로 데뷔했고 29살에 죽었다. 6년의 활동 기간 중 300곡이 넘는 노래를 발표했다. 그가 죽었을 때 광화문에는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들이 가득했고, 그를 따라 죽은 여자도 둘이나 있었다고 한다. 실로 대단한 가수가 아닐 수 없다.


기사님은 먹고사는 게 바빠서 팬클럽 활동은 하지 못하고 있단다. 그런데 지금 나에게 배호에 대해 영업하는 걸 보니 그 어떤 팬클럽 회원보다 낫지 싶다. 기사님은 손님들에게 곧잘 배호 노래를 틀어준다고 했다. 그 음악에 감격해 눈물을 흘린 손님도 있고, 한 시간 동안 택시에 앉아 음악을 가만히 듣고 있느라 목적지 주변을 빙빙 돌기만 하던 손님도 있었다고 한다. 어떤 손님은 배호 음악을 듣고 싶다며 일산까지 자기를 데리러 오라고 하기도 했단다. '진짜일까?' 싶기도 했지만 왜 그런 뻥을 칠까 싶어 기사님의 말을 곧이 믿었다.


가만히 듣자 하니 정말로 노래가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남진과 나훈아를 섞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아이유가 따라 할 만하네 싶기도 했다. 차를 탄 지 20분이 지났다. 택시가 회사 앞에 다다랐다. 어쩐 일인지 내리기가 미안해졌다. 열심히 음악을 소개하고 설명해 준 기사님께 '저 앞에 세워주세요' 하는 것이 마치 정성껏 요리를 해서 밥상 위에 올린 엄마에게 '나 밥 먹었어'라고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누군가의 흥을 확 깨버리는 듯한 미안함. 그렇다고 '저도 한 바퀴 돌면서 음악 좀 들을게요'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이 노래 제목이 뭐예요?'라고 물어봐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지금, 하루의 끝에 생각나는 건 대단한 가수 배호의 목소리가 아니다. 대단한 배호 영업사원 기사님의 목소리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는 그 귀여운 들뜸. 그것이 고스란히 맴돈다. 오늘은 서울의 곳곳을 달리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배호에 대해 자랑했을까. 그리고 얼마나 뿌듯해하셨을까? 아니면 시큰둥해하는 손님의 반응에 '에이, 이 분은 영업 실패네'라며 낙담했을까? 오늘 아침 태웠던 그 아가씨가 배호의 노래 제목을 물어봐준 일이 그의 배호 영업 활동에 작은 보람을 느끼게 해 줬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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