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저녁 8시면 박수를 쳤다

스페인 거주자의 코로나 기록

by 이루나

외출금지 첫날 저녁에 갑자기 박수소리가 들렸다. 저녁 8시가 되면 고생하는 의료진들을 격려하기 위해 박수를 치자는 메시지가 메신저를 통해 돌았었다. 그리고 그 메시지에 충실한 몇몇이 정말 박수를 친 것이다. 우리는 모두 집에 있었으므로 모두 그 박수소리를 들었고 그 박수는 하루의 이벤트가 아닌 매일의 이벤트가 되었다.


매일매일 박수를 치는 사람이 늘었다. 하루 종일 좀비가 출몰한 도시처럼 적막하다가 저녁 8시만 되면 모두 창문이나 테라스에 모여서 박수를 쳤다. 그리고 며칠이 더 지나자 박수소리는 진화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턴 누군가 왜 집에 있었는지 모를 앰프를 이용해 디제이처럼 이야기를 하고 노래를 틀기 시작했다. 몇몇은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내가 사는 동네는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한적한 동네라 그 정도였지만 젊은 층이 모여 사는 대학가나 시내 중심부에선 거의 매일 파티가 열리다시피 했다. 앰프를 이용해 클럽 음악을 틀고 거기에 맞추어 테라스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 모습이 뉴스를 탔다.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전 유럽이 속속 락다운을 했기 때문에 각 나라별 특징이 잘 드러나는 풍경들도 있었다. 스페인은 박수를 쳤고, 이탈리아는 칸초네를 메들리로 불렀다. 독일에서는 그런 시도를 하려던 사람에게 이웃들이 격노한 목소리로 '조용히 해!' '경찰에 신고하겠어!'라고 외쳤다.


나는 한 번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코로나 유행 초기 적대감으로 나를 바라보던 눈빛을 기억해서인지 내 집 테라스에서라도 나를 드러내 놓고 그 놀이에 끼고 싶지 않았다. 마음속 깊숙이는 그들 또한 그걸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란 피해의식 같은 것도 있었다. 또 다른 이유로는 누구에게 뭘 고마워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와 가족이 건강한 건 감사한 일이지만 그건 운일뿐 누구 덕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는 상황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아무런 준비도, 관심도 없다가 이런 극단적인 조치를 하고 나서야 기껏 한다는 게 아무 소용없는 박수라는 걸 동의할 수 없었다. 문제를 이런 식으로 회피하면서 억지 감동을 만드는 일 같았다.


어쨌든 누군가는 아플 것이고, 세상을 떠났을 것이고, 홀로 고통을 감내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도대체 누구를 향해 손뼉 치고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해야 하는 것인지,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경찰차의 영웅놀이를 보았을 때 극에 달했다.


하루는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 저녁 8시에 맞춰 경찰차가 중앙도로를 느릿느릿 지나가며 박수를 치는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댔다. 뒤로 여러 대의 경찰차와 오토바이가 똑같은 포즈와 속도로 지나가며 경적을 울려댔다. 첫날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호응했지만 이윽고 시들해졌다. 이미 외출금지가 시행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사람들은 박수고 뭐고 지쳐 있었다. 불과 사흘 정도 만에 경찰은 더 이상 카 퍼레이드를 하지 않았고, 사람들의 박수소리도 같이 사그라들었다. 8시가 되면 여전히 누군가는 박수를 쳤지만 처음에 비하면 매우 소수의 사람들이었다.


이후 국가가 정한 일부 시간대에 맞춰 산책을 위한 외출이 허용되면서 박수소리는 완전히 사라졌다. 8시는 산책을 가야 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얼마 후부터 꽹과리 소리 같은 게 들리기 시작했다. 정부의 조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프라이팬이나 냄비 밑바닥을 쇠숟가락 등으로 내려치며 항의하는 소리였다. 냄비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시점은 외출이 조건부로 허용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몇몇은 아예 냄비를 들고 집 밖으로 나와서 항의했고 이들 중 또 일부는 조직적으로 시위를 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보수당 지지자들이었다. 스페인은 현재 중도좌파와 급진좌파가 연합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은 대부분 보수당 지지자이다. 이들은 외출 자유를 비롯한 여러 주장을 외치며 시위했다. 시위대 상당수는 스페인 국기를 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 주장과는 별개로 내 입장에선 다소 위협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결국 나는 지난해 내내 단 한 번도 박수를 치지도 냄비 바닥을 치지도 않았다. 그저 박수소리가 나면 박수를 치는 사람들을 지켜봤고 냄비 소리가 나면 냄비 바닥을 치는 사람들을 지켜봤을 뿐이었다. 잘하고 말고 한 일은 아니었다. 그냥 그게 내가 한 일이었다.